던져져있는 우리

"요즘은 어떠니?"

"어려워요."

"음. 어렵지."

"너무 어려워요. 특히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던가' 하는일들은 말이죠. 정말이지 너무 어려운거에요. 거의 절망적인 수준이에요. 저는 정말 더이상 욕심부리지 않거든요. 연애를 한다거나 하는 거창한 꿈을 가지고 있는것도 아니고, 밤새도록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출하기 위해 고민하는것도 아니고, 그저 아주 기본적이고 일상적인 패턴을 갖고 싶은 것 뿐인데- 그게 너무 어려운거 있죠. 아- 사람들은 어떻게 그토록 어려운 일들을 매일매일 태연하게 성취할수 있는걸까요?"

"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는것은 '성취'해야 할 무엇은 아니지. 안자고 뭐하니?"

"아무것도 안해요."

"음?"

"아니요- 뭐랄까, 그 긴 불면의 시간동안에는 말이죠, '내가' 그 어떤것을 생각한다기 보다는, '그 어떤 생각들이' 내 머리속을 차지하고 난장판을 만들어 놓고는 무책임하게 또다른 생각에게 나를 내주고는 도망가버리는 기분이에요. 뭐랄까, '내'가 '나'에대해서 생각하는것 같지만, 그 생각하는 '나'는 없는것 같은 기분이랄까요? 아! 정말, 아무것도 할수가 없어요.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코기토라는게 좀 낡은 것이긴 해. 그런데 안자고 무슨 생각을 해?"

"네? 코기토는 뭐죠? 뭐. 음. 글쎄요. 늘 똑같죠 뭐. 이를테면, 몇년전에 내가 누군가에게 했던 말에 대해서 집요하게 생각하고있기도 하고, 그 때 내 앞에 앉아있던 그 사람에 대해서 생각하기도하고, 그사람 생김새는 어땠는지 성격은 어땠는지 바이오그라피같은걸 즉석에서 만들어내기도 하고, 그러다보면 또 그사람과 내가 앉아있던 그곳의 분위기는 어떠했는지, 그 카페 주인의 생김새는 어땠는가 따위를 생각하고 있기도 하고요. 정말 누군가가 옆에서 그런 저를 보고있다면 깜짝 놀랄거에요. 얌전히 누워서 눈감고 잠들어있는줄 알았다가도, 어느순간 슬며시 웃기도 하고, 갑자기 소리내어 '아아!' 라고 탄식한다던가, '오오!' 하고 감탄하기도 하니까요."

"하하."

"아아! 그 모든 과정들이 너무 환멸스러운거 있죠! 정말 그렇게 누워서 세시간 네시간을 좀비처럼 누워있다보면- 간절한 기분이 되어서 이런 혼잣말을 하곤해요, 자- 난 여기 가만히 이렇게 얌전히 누워있을테니 제발 그 무엇이든 좋으니- 나를 차지하고 쉬게 해줄수 없겠니? 라고. 그러니까- 뭐랄까- 나는 분명히 깨어있는데, 깨어있다는 그 사실이 그렇게 무기력할수가 없어요. 더이상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아무것도 결정할수 없을것 같은 그런 좌절같은걸 느낀다고나 할까요."

"담배한대 피울께. 칙! 너의 이야기를 들으니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생각난다. '일리야'라는 말 들어봤니?"

"아니요?"

"임마누엘 레비나스라는 프랑스 철학자의 이야기인데. 내가 과연 잘 설명할수 있을까 모르겠다만, il y a (일리야) 라는 건 프랑스어로 '있다' 라는 개념이야. 독일어에는 es gibt 라는게 있지? 어쨌든 그사람이 처음에 상정하고 있는 상황은 이런거야. 상상속에서 네가 생각할수있는 모든것을 파괴해보라는거야. 이를테면, 너도 없고, 나도 없고, 이 테이블도 의자도 없고, 그렇게 하나씩 지워가다가 그 마지막에 남는게 무엇일것 같니?"

"글쎄요. 텅 빈 공간이 남을까요. 우주공간이 남을까요?"

"허허. 우주인같은녀석. 음. 사실 좀 사변적인 이야기이긴하다. 글쎄 나에게도 좀 난해하긴 하지만 그가 말하기를, 모든것이 무無로 돌아간 상태에 남아있는 것은 어떤 사물이 아니라 단순히 '있다' 라는 사실 자체가 남는다는거야. 텅 빈 공간이 남는다기 보다는, '텅 빔'의 가득참인거지. 그 사람 표현을 빌자면 침묵만이 중얼거리고 있는 그런 상태라고도 하고, '무無가 무無를 만든다' 라고 말하기도 하고, 표현이 좋지? 하여간, 인칭이 없는 어떤 힘의 장-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지."

"아- 재밌네요!"

"자, 계속 들어봐. 결론은, 너는 결국 너에게로밖에 돌아올 수 없다는거야. 그게, 아까 말한 '일리야' 속에서 네가 너라는 자리로 존재하는 댓가라는 이야기이지. 말하자면, 자유롭다고 여겨지는 너는, 너를 차지하는 대신 '계속해서 너 자신에게 얽메임'을 댓가로 치뤄야 한다는거야. 그게 바로 고독이고, 고독의 비극성은 바로 그 자기동일성의 포로로 갇혀있다는 인식 때문이라는거지. 우리는 밝음의 영역에서는, 즉 일상적인 삶 속에서는, 보고 느끼는 것들을 통한 '향유'를 통해서, 혹은 일상적인 경제활동을 통해서- 자기망각이라는 것이 가능하지만, 불면의 시간에 이르러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거야. 우리는 '불면의 시간' 속에서, '일리야' 속에서 그 고독을 어렴풋 깨닫게 된다는거지. 바로 그게 존재방식자체이고, '고독'이라는 건 우리가 존재하기위해 어쩔수 없는 조건이라는식의 이야기이지.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확인하는일만으로도 매순간 굉장한 노력을 하고있는것인지도 몰라. 또 재미있는건 뭐냐면, 그나저나, 이해가 가니?"

"어려워요."

"그래 나도 어렵다. 재밌는것은 뭐냐면, 그사람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일상적 삶'이라는것이 바로 그 '얽메임'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구원'이라고 보고있다는 점이야. 그래서 바로 너처럼 일상적인 삶은 위한 노력을 열등하고 진부한 무엇으로 치부해버리는 모든 사상들을 혐오하지."

"아, 아녜요! 바로 그 '일상적인 삶'이 바로 지금 저에게 절실한 무엇이거든요!"

"하하. 욘석. 알았다. 어쨌든, 또 재미난건, 그 불면의 시간, 그 공포스러운 익명적인 존재 속에서, 내가 나 자신으로 돌아와서 어제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다고 확인하는 과정 자체가, 그 얽메임의 순간이 바로 '현재'이고 홀로서기이고, 출발이라는거야. 거기에서부터 그는 시간개념을 설명하기 시작하지- 타자는 미래-라고 하기도 하고, 하하 그만해야겠다."

"뭔가 색다르네요. 왠지 감동적이기도 하고."

"내가 괜한 얘기를해서 '불면'이라는걸 미화 시켜놓은건 아닌가 모르겠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고 해 준 이야기였어."

"하하. 그러게요 덕분에 오늘밤엔 불면의 시간을 좀 더 고상하게 보낼수 있을지도 몰라요. 저도 재미난 이야기를 하나 해드릴께요. 며칠전에 꿈을 꿨는데요. 아니. 사실 그건 꿈이라고 할수도 없는 그런 순간이었어요. 뭐랄까- 원래는 꿈이 끝나는 지점과 현실이 시작되는 지점이 정확히 일치해야만 하는데, 뭔가 그 시스템이 순간적으로 방심해서 그랬는지 그날은 꿈이 채 끝나기도 전에 깨어버린거에요! 보통 '가위눌린다' 라고 하잖아요, 하지만 그것과는 조금 달랐어요. 뭐랄까- 그 상태가 어색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아! 내가 아직 꿈속에 있구나-' 하는 자각이 있고나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거에요."

"어떤생각?"

"'아! 이 상태를 내가 그냥 인정해버리면, 그냥 이 세계에 그대로 머물수 있게되는게 아닐까?' 하고 말이죠. 하지만 바로 그 생각을 하는 순간 깨어나버렸어요. 제 생각에는 그게 어떤 원초적인 불안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뭐랄까, 일반적으로 '영원' 이라는것은 뭔가 '죽음'의 반대편에서 행복이고, 평화인것처럼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닐까 하는생각이 들더라구요. 영원히 지속된다라는 것 자체가 불안이고 공포가 아닐까 하고요. 계속 들어보세요. 그런데 꿈에서 깨어나서도, 그 편에, 그러니까 꿈속에 과연 내가 있었는가 하는 의문이 들면서도, 그렇다고 현실에 있다는 그 사실도 그다지 믿음직하지는 않더라구요. 아아- 장자의 호접몽과같은 이야기를 하려는건 아니에요. 뭐랄까, 같은 맥락에서- 우리가 '뭔가가 되고싶다'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할때에도, 뭔가 그와 비슷한 두려움이 있는것 같았어요."

"예를들면?"

"예를들어, 제가 소설가가 되고싶다고 말을 하지만, 사실 그 경계가 어디있느냐는거죠- 소설가가 되기 전 단계와 소설가가 되고난 다음 단계를 구분하는게 도데체 뭐냐는 생각인거죠. 그냥 어쩌면 '나는 바로 지금 이순간부터 소설가다' 라고 생각하면, 그냥 그렇게 되는건데, 단지 나는 그런 상태를 스스로 인정하는것이 두려워서 계속해서 연기하고만 있는게 아닌가 싶었거든요. 마치 꿈 속에서 먼저 깨어난 의식이 '아 이건 꿈이구나, 나는 꿈속에 있구나' 라고 인정하기 두려운것처럼 말이죠."

"그래, 네가 그렇게 인정하고나서 만족한다면 이미 너는 소설가일테고 그것으로 아무 문제 없는것처럼 보이지만, 정말 그것으로 네가 만족할 수 있겠어?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넌 정말 성공할꺼야. 하지만 '등단'이라는 좁은 문이 엄연히 존재하고, 그 입구를 무시한 채 활동한다는건 쉬운 일이 아니겠지. 네가 이미 작품활동을 하고있는 중견 소설작가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 검증되지 않은 어중이 떠중이를 소설가로 인정하고 싶겠니?"

"그렇긴 해요."

"하하. 그렇게 쉽게 수긍해버리다니. 욘석. 나도 네 생각에 동의해. 스스로가 스스로를 인정한다는건 어려운 일이지. 네가 만약 너 스스로를 소설가라고 인정했다면 된거지 뭐. 그저 소설을 쓰기만 하면 되잖아!"

"그러게요, 간단해서 화가나요."

"뭐. 어쩌겠니. 죽이되든 밥이되든 쓰는거지."


정신과의사나 사회부기자, 혹은 사생아

"우주비행사? 지원해봐."

"응. 사실은-"

"사실은?"

"웹사이트에서 지원서를 입력하다가 학력을 입력하는 페이지가 맥에서 지원이 안되는 폼테그를 썼길래- 그만뒀지."

"좋구나!"

"뭐가?"

"핑계가."

"아니, 뭐. 사실은 우주비행사가 되고싶다기 보다는, 우주에서 죽는건 어떨까- 하고 생각해봤거든. 상상해봐- 그 마지막순간을. 기체를 수리한답시고 뒤뚱거리며 우주선 본체위에 선 우리의 주인공을. 커다란 헬멧에 연결된 헤드폰에서는 계속해서 암호같은 지시가 흘러나오겠지만 그에게 그 언어는 더이상 의미가 없을꺼야. 이미 그는 눈앞에 펼쳐진 장엄한 광경에 압도되어있을테고,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순간에 대해서 생각하느라 오직 거친 숨소리에만 집중하고 있을테지. 천천히 산소가 공급되는 케이블을 자신으로부터 해체하고나서 그는, 전인류를 등지고서 그 반대방향으로 꺼져있는 공간을 향해 힘껏 한번 발을 구르겠지. 이를테면 안드로메다방면- 이라던가 마젤란은하쪽으로 라는식으로 말야. 그저 한번 힘껏 뛰어오르는것만으로 그게 바로 마지막인거야. 마지막인동시에 영원이기도 한거지. 그러자 지상의 관제소에서는 다급하게 무슨일이 일어난것인지를 그에게 러시아어와 영어가 뒤섞인 언어로 물어보지만-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지."

"러시아어나 영어공부를 충분히 하지 않은게 아닐까."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응. 아니. 뭐라고? 아- 가만히 있어봐, 이미 너무 멀어져버려서 모두가 그를 포기해야했을때 쯤. 그가 전인류를 향해 너무나 침착한 목소리로 한마디의 말을 하는거야. "달의 꼭대기에서 지구는 푸르고, 여기서 내가 할수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군요" 라고. 아!"

"음- 그렇다면, 그의 이름은 아마도 '톰'?"

"음- 알고있었구나. 뭐 이름이야 '죤'이나 '잭'이어도 상관없어. 이런. 넌 참 상상력이 없구나. 상상해봐- 시간과 공간개념조차 무관한 그 곳에서- 수천년동안 썩지도 않고- 그저 우주먼지들에 조금씩 풍화되어 사라지는 그 광경을! 아- 그곳에서 죽게되면 영혼은 어디로 가게될까? 이곳에서 우리가 말하는 영혼에 대한 이야기들이 그곳에서도 유효할까?"

"음- 좀 사치스러운 죽음인걸. 죽음에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하려는 건 불순해보여. 실제로 톰은- 아니 잭이었나? 그가 남긴 마지막말은 내 생각엔 '이 죽음에는 아무런 숭고한 목적도 거창한 의도도 없으니 오해하지 말아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의미하는것 같은데? 말하자면 마치 너같은 숭배자가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는듯. 내 생각이 맞다면 아마 그는 그 마지막 말을 남기고나서 숨이 끊어지기 전에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몰라. '아아- 결국, 실패다!'"

"음- 그래. 그편이 더 숭고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숭고하다고 생각하면 그의 죽음을 욕되게 하는일인가. 아아 모르겠다. 하여간,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비행사 지원은 실패다."

"그래 잘했다. 여기 지구에 남아있어줘. 이 외계인같은 녀석아."

"그래. 그래. 물론이지. 그런데 상상해봐."

"뭘 또 상상해보라는거야."

"우주비행사를 막연히 꿈꾸고있는 또 다른 주인공을 상상해봐. 예를들면 나같은 인간- 말이지. 너무도 평범했던 그는 일단 우주비행사가 되기로 했다는 결심을 조심스럽게 발설하기 시작할꺼야. 그가 살아왔던 지난 날들에 비해 너무도 독특한 결심을 가졌다는데에 대해 그 스스로 흐뭇해하면서 말이지. 주위의 친구들은 그런 그의 결심을 듣고서- 그래 할수있어! 라고 유난스럽게 격려해줄테고, 그것이 빈 말인줄 알면서도 그는 왠지 우쭐해질지도 몰라. 가족들을 설득하는 것은 애초에 포기했을테고, '그래 나중에 우주비행사가 되어서 당당히 나의 노고를 위로받자-' 라고 짐짓 비장한 태도로 다짐할지도 몰라. 자- 우주비행사가 되기위해 그는 먼저 영어에 통달해야만 하겠지? 그래서 우리의 주인공은 종로같은데서 밤낮으로 토익이든 토플이든 닥치는대로 수강하기 시작했어. 또 러시아어나 우주물리학이나 우주항공에 대한 일반을 알아야했기 때문에 유학을 고민하기 시작했을지도 몰라. 아니 어쩌면 학위- 같은게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고. 어쨌든 매달 조달해야만하는 학원비와 유학자금 때문에 고민만 더 늘어나기 시작했을테고, 그 때문에 그는 돈이 된다면 닥치는대로 파트타임 아르바이트에 투신하지. 그는 그런 고된 나날들을 얼마간 유지할수 있을지도 몰라. 왠지 그런 비장미가 깃든 자신의 삶이 어떤 정해진 운명인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이 그를 숙연하고 진지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거든. 어쨌든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어느덧 서른 중반의 성인이 되어버린 우리의 주인공이 밤늦게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그때 그는 아마 러시아어 남성명사 여성명사 같은걸 외우고있었을지도 몰라, 갑자기 이런생각이 드는거야."

"어떤생각?"

"음-"

"뭔데?"

"그러게- 무슨말을 했을까? 뭔가 이 모든 이야기를 허탈하게 만들만한 파괴력있는 마땅한 말이 생각이 안나네. 음-"

"아아- 됐다- 그만해라."

"엇. 그래! 바로 그거야! 자, 들어봐- 독립문 고가도로를 지나고있던 버스안 맨 뒷자리에 앉아서 러시아어 단어장에 고개를 떨구고 있던 우리의 주인공이- 무거운 고개를 들고 창밖에 펼쳐진 서울하늘을 응시하며 이렇게 읖조리는거야. '아아-! 됐다. 이정도면 됐다. 그만두자.' 라고 말이지. '이정도면 됐다-' 라는 그 말은 어떤 절망이나 허탈감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안도감이나 평정심에 가까운 말인거야. 아! '톰' 처럼 달의 꼭대기에 서서 푸른 지구를 바라볼수는 없게 됐지만, 그는 그 순간, 독립문 고가위에서, 나는 그저 우주먼지와같은 무기력한 개체일 뿐이다- 라는 깨달음을 얻게된 것이지! 어때? 감동적이지 않니. 그런데, 지금 내가 우주비행사 이야기를 하고있긴 하지만, 난 정말 우주비행사가 실제하는지조차 의심스러워. 적어도 현실적이다 라고 말할수 있는것들은 적어도 중력의 영향아래 있는 어떤것이어야 할것 같지 않니? 우리의 시야를 떠난, 우주공간에서의 그 무엇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그렇다고- 음모론 같은걸 주장하고 싶은건 아니지만."

"어휴- 숨이나 쉬고 말해라. 어쨌든, 넌 아마 우주에서든, 지구에서든, 독립문 고가 위에서든- 그 어떤 곳에서든 그 외계인같은 사고방식 덕분에 고상함을잃지 않고 살 수 있을꺼야. 그래. 이제 우주비행사는 됐고, 또 뭐가 되고싶으니?"

"음. 정신과 의사나, 사회부 기자, 혹은 사생아."

"뭐? 사생아?"

"하하. 농담이야. 뭐, 소설가가 되고싶다고 말하곤 하지-"

"음- 적어도 우주비행사 보다는 현실적이군. 굳이 소설가여야만 하는 이유라도 있어? 이유를 묻는건 실례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아니야, 이유를 준비 해 두고있는 사람에게 이유를 묻지않는게 더 결례지."

"그럼 물어보지 않는게 좋겠군."

"그럴 경우엔, 물어보지 않아도 이야기하면되지. 소설가여야만 하는 이유는 뭐냐면- 말야."

"잘도 말하는군."

"그래! 소설가는 꼭 텅 빈 우주공간에 조난당한 우주비행사같기도 해. 뭐랄까 스스로가 스스로를 우주미아로서 존재할수밖에없는 존재로 자각하는 그런 유니끄한 존재말야. 그리고, 뭐랄까- 소설가들은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치는것들에 대해서도 늘 과도하게 인식하고, 매 순간 흘러넘치는 감각과 인식의 홍수에 장애-를 느끼는 사람들이잖아- 프루스트식의 과잉이랄까. 그것은 마치 지구상에서 생활하는 우리 인류는 매 순간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다는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데, 우주인들은 끊임없이 생존을 위해 숨을 쉰다는것을 인식해야 하는것처럼 말야. 그리고 소설가가 쓴 한편의 작품은 마치 우주에서처럼 부패하지도 않고, 인쇄에 인쇄를 거듭하며 서로다른 독자들을 경계없이 드나들며 마치 또다른 생명인양 죽지않고 계속되지- 굳이 사라지는 것이 있다면, 독자들이 책장을 한장 한장 넘길때마다 마모되는 펄프랄까, 마치 광속으로 움직이는 우주먼지에 천천히 천천히 풍화되는 그런 이미지와도 같지않니? 왠지- 내가 한 이야기지만 그럴듯 한것 같다."

"음, 그렇다면, 아까의 비유로 돌아가서- 우주비행사가 꿈이었던 우리의 주인공의 일화처럼, 너도 올바른 글쓰기를 배우기위해 '올바른 국문법'에 관련된 책들을 공부해야 할지도 모르고, 애초에 문예창작과에서 공부하지 못한것에 대한 강박을 가지게될지도 모르고, 소설가가 되기 전까지 수입이 없다는것에 대해 열등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네? 그리고 그러던 어느날 독립문 고가위의 버스안에서 '그래, 이정도면 됐다-' 라고 말하게될지도 모르는일이고. 우주비행사든 소설가든 정신과의사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라고 느끼기 전까지의 과정은, 누구에게나 꼭 같이 고단하고 진부한 일상의 반복인거야. 음. 그렇다고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지을필요는 없어. 이렇게 이야기하면 너무 간단해지긴 하지만, 그 고단한 과정은 모든 소설가에게 꼭 같이 할당된 것이고, 단지, 그것을 견뎌낼 수 있으면, 견뎌낼수만 있다면, 그것이 되는거 아닐까?"

"뭐가 된다는거지?"

"소설가나 우주비행사. 아니면 정신과의사나 사회부기자가!"

"아니, 그렇게 간단한 것이었다니!"

"그래. 간단해. 우리는 간단하니까 애쓰지 않는거야."


우주비행사가 되어보는건 어떨까

"읽어봤니?"

"응."

"다섯편 모두 다?"

"응. 다 읽었지. 정말 뭔가 쓸 작정이야? 생각보다 열심히인걸."

"아니, 뭐 그저 장 수만 늘리고 있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매일 내가 소비하는 커피값이 너무 아까웠을꺼야."

"단순히 커피값이 아까워서 이런 글들을 생산해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재미난 일이네. 게을러서, 게으름을 소재로 뭔가 쓰겠다는것이 곧 게으름을 극복하는 수단이 되어버렸으니. 그런데 몇가지 궁굼한게 있는데- 물어봐도 되려나. 이 대화들 속에 혹시 나도 포함되어 있니? 나와의 대화를 염두해두고 글을 쓴 적이 있어? 그것이 아니라면 아주 조금은 속상할 것 같지만, 그래도 물어 봐야지."

"너? 너와의 대화- 글쎄, 음- 글쎄. 시도는 해보았지만, 실패였지. 게다가 누군가의 입을 빌려 말해보려고하면, 매번 단 몇줄도 견디지 못하고 금방 <나>로 돌아와버리더라고. 사랑과영혼이라는 영화 기억나? 거기서 우피골드버그가 남의 몸에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우스꽝스럽게 불평을 쏟아놓곤 했었잖아. 내가 말하고 있는 것들이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내가 의도하지 않은 표정과 몸짓으로, 뉘앙스로 전달되는 듯한 기분이 꽤나 불쾌한 일이더라고. 이것이 창작이었다면, 한번쯤 못된 말투를 흉내내보거나 한심한 이야기를 해보기도 했으면 좋았을텐데, 그것 조차도 참아내지 못하겠더라구. 결국엔 혼자서 질문하고, 혼자서 대답하고, 혼자서 울고 웃고한 것밖에 안되지. 결국 나에게서 한발자국도 못벗어난 기분이었어. 마치 <자위>하고난 것 같은 불쾌함이랄까."

"어이쿠 세상에! 내 말투가 그렇게 불쾌했었어? 게다가 자위하고난 것 같은 불쾌함이라니. 결국 날 생각하며 자위를했다는거야 뭐야. 후후. 놀라긴- 농담이야. 그렇다면, 애초에 <게으르다>, <게으르지 않다>라는 결론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던가보네. 그런데 왜 한참 쓰다 말았어? 그래도 상당히 재미있는편인데- 예전의 네가 쓰던 그 쓰레기들 보다는!"

"하하- 금방 잘도 인용하는군. 모르겠어. 그저 그렇게 누군가 나에게 엉뚱한 질문을 해주고, 대놓고 비난을 해주기를 바래서 그랬는지도 몰라. 실제의 대화속에서는 내가 누군가에게 게으르다는 이야기를하면, 그런 고백이 뭔가 <반성>의 의미로서만 들리는지, 꼭 같이 '위로'나 '격려'의 이야기만을 해주거든. 그게 불만이었던가봐. 누군가 한번쯤은 좀 더 무덤덤하게, 엉뚱하게, 가차없이 대답해주면 좋겠다 싶었던 것이지."

"다섯번째 대화에서처럼 실컷 욕도 한번 얻어먹고싶기도 하고 말이지?"

"응. 맞아. 그렇지. 그 대화를 쓸때에는 정말 누군가와 격렬하게 싸우고 난 것처럼 흥분을 느꼈던 것 같애. 정말 난 어쩌면 상대가 감정적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일 때 까지, 온갖 비난이 목구멍까지 솓구칠때까지 몰고가 버리는 그런 잔인하고 못된 심성이 있는지도 모르겠어. 심지어 내가 만들어낸 화자에게까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까지 할 필요는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지. 결국 파란색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런 말들을 듣고 싶었던 거니까. 그래서 여기까지다. 결국, 게으른 것 뿐이고 행동해야 한다는 진부한 결론, 사실 아무 말도 필요없었던것 같은 기분. 그래서 그만뒀지. 아마 그 대화가 내가 할수있는 가장 한심한 형태의 주절거림이었을거야. 현실의 대화에서는 그 누구도 그렇게 비난하는 수고를 해주지는 않지. '죽고싶으면 죽어라' 하고 말야. 과연 그 순간 네가 내 앞에 앉아있었다면, 너는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었을까?"

"나? 음 그런 네 앞에 앉아있는다는 것은 상당한 수고를 요하는 일일텐데- 훗. 어떻게든 빨리 도망갈 핑계를 생각하고 있지 않았을까? 훗 이번에도, 농담이야. 생각하는 것이 있더라도 아마 아무말도 하지 않았을껄? 너의 만족을 위해 감정을 무너뜨릴만큼 자비롭지도 않고 말이지. 그리고 내 의견은 너에게 이야기되어질 필요가 없어. 네가 한가지 간과하고 있는게 있는데, 네 글을 읽으면서, 그 이야기를 해주고싶긴 했어."

"그건 또 무슨소리야? 그 이야기가 뭔데?!"

"넌 말야. 누군가의 <공감>을 바라지 않아. 물론 <이해>를 바라지도 않지. 그래서 내 의견은 이야기되어질 필요가 없다는 거야. 틀렸어? 이미 너도 알고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너의 입장과 처지에 대해서 <쉽게> 공감하는 것을 바라지 않거든. 너는 결국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너만의 입장과 처지를, 아무도 침입할 수 없는 너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만들고 고수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지. 너에게서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어. 경계에 대한 집착을, 영역에 대한 강박을 그리고 높고 희박한 곳에 세워진 너의 왕국을 말야. 이렇게 내가 너로부터 45센티미터 떨어진 곳에 앉아있지만, 왠지 '너'라는 성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위압적인 입구에 서서 초인종을 눌러야만 하고, 출입허가서를 작성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것이지. 네가 좋아하는 '시민케인'이라는 영화 생각 나니? 꼭 그 영화속 미스터 케인이 세웠던 제나두의 성처럼 말야."

"아! 그 비유 마음에 들어. 그럼 나도 죽기전에 '로즈버드-' 따위의 말밖에는 남길것이 없겠네- 하하. 아니지 좋아하면 안되지. 그런데 그렇다면, 난 왜 그런거지?"

"니가 왜그런지 내가 어떻게 아니? 웃겨. 역시 넌 너의 글에서처럼, 곧바로 쏟아져나오는 독설적인 말들을 좋아하는구나. 그렇다면 이제 성의 입구는 통과한 셈인가? 들어가도 되겠어?"

"물론이고말고."

"다시한번 말하지만, 넌 그저 누군가에게 <아유- 나는 너무 게을러>라고 투정부리듯 이야기하고 싶었던거지만, 상대방이 너의 이야기를 듣고서 <어쩜 나도그래!>라고 외치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거야. 그 누구와도 너와 같은 등급의 고민을 공유하고 싶지는 않은거야. 네가 글을 쓰고싶다고 말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가 될 수 없는 것은 왜일까? 결국 같은 이유야. 넌 다른사람들의 소설 속에서, 네가 너의 사상의 왕국에 쌓아둔 <고유번호를 메겨놓은 값진 생각>들이 그저 값싼 공산품으로 밝혀지는 것이 두려운거야. 네가 진품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대중소설 속에서 발견하는 순간 너는 네가 어렵게 발견한 것들이 모두 위작이었다고 탄식하게 될테니까. 내 기억이 맞다면, 넌 다자이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읽고서 가장 깊은 탄식을 했던것 같은데."

"아! 그래 인간실격!"

"신났군. 이제 너의 침실로 향하는 계단에 올라선 셈인가? 이제 칼을 뽑아야 할 타이밍인가! 네가 너의 게으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좀 더 단순하고 명쾌한데에 이유가 있는거야. 하지만 너는 그 문제를 다른 사람은 물론 너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할만큼 복잡하고 어려운 수준의 문제로, 이해할 수 없는 영역으로 자꾸만 감추어두고 싶은 것이지. 별것도 아닌데 말이지! 너는 너의 보물들을 누군가가 쉽게 발굴해내어 금방 해독해 내는것을 너는 원하지 않으니까. 너 자신 조차도 말이지. 결국, 네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문제들은, 사실 네가 가장 잘 알고있는 셈이지. 그리고 그 것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이지."

"이런- 완전 참패한 기분인걸."

"공감을 모르는 너같은 녀석에겐, <그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야> 라는 말 보다 더 잔인한 말은 없지. 그런면에서 다섯번째 화자는 너의 불순한 의도를 어렵게 비난하긴 했지만 좀 더 차분하게 말했어야해."

"어이쿠, 지금 너와의 대화가 거의 완결편인 셈이구나. 결론으로서 손색이 없었을텐데 아쉽다. 미안하지만 당장 내 창작 속으로 기어들어가서 마지막 화자가 되어주면 안되겠니? 그래. 알고있어. 사실은 별 일 없고, 별 것 없지. 게으르다는 고민 때문에 죽거나 하는 사람은 없을테지."

"그래. 내가 말했잖아. 인생 별 것 없지."

"아- 하지만, 그렇게 말하지 말아줘. 그렇게 별 볼 일 없는 생이 너무 끔찍해. '누구나 다 그런거야' 라는 격언 따위를 위안삼아 '다 그렇게 사는거야' 라고 결론을 내려버리고 고만고만하게 사는 것말야. 내 생이, 진부해지고, 불필요한 파편처럼 느껴지고, 소모적인 공산품처럼 느껴지는것은 너무 끔찍하다구. 나도 알아, 내가 발버둥치듯 비껴선 그 자리가 사십억의 인구가 겹겹이 늘어서 있는 그 대열에서 얼마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 너무 잘 알지. 그래서 단순히 게으름 조차도 내겐 고난이 되어야 하고, 방구석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 조차도 고행이라고 여겨야만 하는 이유였던거야. 그 누구도 알아주지도 않는데 말이지! 난 왜 이모양일까-"

"고만고만하게 사는것이 무엇이니? 진부한 것은 무엇이고, 불필요한 파편은 어떤거야? 대체, 사십억의 인구가 겹겹이 늘어서 있는 통계학적 이미지는 어디서 얻어진거냐구? 네가 그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고 믿고있는 근거는 뭐지? 너. 우주인이야? 달나라에서 왔니?"

"그래 어쩌면 그 오만방자한 우주적시각이 나를 괴롭히고 있는것인지도 몰라. 우주비행사가 되어보는건 어떨까-"


네가 저지를 수 있는 최대한의 위선

"정말? 아무것도? 아무도?"

"그래. 아무것도. 아무도."

"말도 안돼. 내가 보아온 너는 적어도 항상 뭔가를 추구하고, 그 주어진 상황속에서 열심히였던것같은데- 게다가 적당히 잘 해내기까지 했잖아! 넌 잘하고 있는거야. 잠시 슬럼프인거지."

"아니야. 아니라구. 정말 그저 방안에 앉아서. 아무 것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니까. 아- 요즘의 난 말야, 그저 소화가 덜 되어 답답한 가슴으로 불필요하게 내 몸에 보충된 에너지가 어서 소비되기만을 바라며 의자 위에 가만히 앉아있거나, 산채로 매장되는건 어떤 기분일까를 상상하며 시계소리에 맞춰서 두눈을 껌뻑거리고 누워있거나, 그 두가지 뿐이야. 나같은 인간을 위해서 조차도 일용할 숙식과 숙박이 제공된다는 건 정말 전인류적 수치야. 차라리 헛된 것이어도 좋으니 미래에 대한 공상에 빠진다거나, 누군가를 그리워하기라도 한다면! 컴퓨터 앞에서 이따위 인생에도 혹시 운명적인 계기나 대답 같은 것이 마련되어 있는건 아닐까 하며 의미없는 말들을 검색창에 쳐넣고서 멍청하게 위 아래로 스크롤이나 하고있는 꼴이란! 운명적인 대답은 얼어죽을! 결국 싸구려 포르노사이트에나 기어들어가서 짧은 무비클립들을 끊임없이 재생시키며 자위에 열중하게되지. 그러다 보면 금방 잠들어야 할 시간을 훌쩍 넘겨버리고, 자야할지 일어나야 할지 애매한 시간이 되면, '그래 살아있는것만으로도 충분해- 라고 중얼거리다가 잠들고 마는거야. 일말의 후회도 없이 말이야. 늦은 잠에서 깨어난 다음날은 전날과 다를바 없이 끔찍하기만 하지. 뭘 원하는지도 모르면서도 꾸역꾸역 외출을 하고, 화창한 봄볕 아래에서도 부끄러운줄 몰라. 그게 내가 말하는 고뇌이고 철학일까. 알량하게 예술가를 꿈꾸고 그 허영을 채운답시고 매일 3850원짜리 에스프레소를 위속에 들이붓지. 생산해 내는 것들은 결국 쓸데없는 중복일 뿐이고 쓰레기일 뿐이야."

"정말 그렇게 생각해?"

"응, 이젠 나 스스로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아. 얼마전에 채플린의 영화를 봤어. 갑자기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미치도록 그리웠거든. 우리의 찰리 채플린이 텅빈 의자위에 애처로운 표정으로 혼자 앉아있는 어떤 쇼트였는데 갑자기 화면이 까맣게 변하면서 'Alone'이라는 타이포가 나오는거야. 무성영화라는 것을 깜빡했던거지! 나뭇가지 처럼 도안되어있는 A의 세리프가 참 예뻤는데, 어쨌든- 난 채플린 특유의 슬랩스틱 코미디에는 집중하지 못한채, 내내 한가지에 대해서만 생각했어, '나'라는 녀석을 하나의 단어로 요약한다면 뭐가 가장 어울릴까 하고 말야. 그래서 생각해 낸 단어는 행복하지도 않은데다가 비극적이지도 않은 그런 단어였어. <낭비>라는 단어였지. 그래. 낭비라는 단어가 꼭 어울려. 어쩌면 낭비라는 분석을 내리는 것 조차도 낭비인셈이지. 난 말야 차라리 죽어있는 편이 나을지도 몰라. 한심해보여도 어쩔 수 없어. 미안. 사실은 거짓말을 했어. 난 오늘 여기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않았지만,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는 건 거짓말이었어. 우연히 누군가 이곳을 지나치고, 나를 발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상상했으니까. 거의 열망했을 정도지! 그런데 마치 완벽하게 계산된 히치콕의 영화처럼, 해가질무렵 창가 쪽을 바라보고 있는 내 프레임 속으로 네가 걸어들어오는거야. 아- 그러고보니 필름포럼에서 히치콕 걸작선을 하고있는데, 지금가면 아마 현기증을 볼 수 있을꺼야. 교회 종탑씬에서의 외곡된 화면, 그리고 버나드 허먼의 찌릿찌릿한 음악이 일품이었는데 말야. 어쨌든, 이상하기도 하지. 아니 이상하게 되어버렸어.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었는데. 항상 이시간이면 너무나 외로워지거든. 그래 외로움말야. 무슨말이든 하고싶었는데 결국 정말 무슨말이든 이야기해버렸네. 그런데, 너 듣고 있니? 이런 한심한 얘기들에는 아무 대답도 소용없지. 알아, 그럴 가치도 없어. 아무것도 안마시네. 바쁜거야?"

"아이구 정말 답답한 소리좀 그만 해. 전인류적 수치라고? 그만둬. 너를 위해 소진되는 에너지가 아까운 것 같다고?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그거 알아? 온갖 것을 핑계삼아 삶에는 전혀 흥미 없다는 듯 이야기할 때의 네 모습이 얼마나 역겨운지를? 뭔가 이상하지 않아? 그 모든 상황은 결국 네가 원한 것 아냐? 왜 아무것도 못해- 글을 쓰고 싶다고? 그렇다면, 좀 더 열심히 플롯을 짜고 글을 써.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종이를 꺼내고 붓에 물감을 묻혀서 칠하는거야. 누군가가 그리우면 당장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는거야. 배가고프면 밥을 먹고. 소변이 마려우면 소변을 보는것처럼 간단한거야. 배가고픈데 누가 밥을 떠먹여주기만 바라고 있는거야? 너 그렇게 형편없는 녀석이었어? 죽어있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도데체 너라는 녀석은 고통이라는 것을 겪어보기라도 한거야? 날씨가 조금만 추워도 춥다고 벌벌 떠는 녀석이 무슨- 아이구, 니 말대로라면 그냥 그래 당장 죽어버려라- 아니, 아니지 그렇게 말했다가 무슨 원망을 들으려고. 너라는 녀석은 죽고싶다고 떠벌리고 다니면서도 그럴 수 없는 온갖 변명거리들을 준비하고 다니겠지. 정말 이대로의 너라면, 나도 널 위해 소진되는 에너지가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게다가 오늘 네 얘기를 듣고보니, 네가 어디서 굶어죽더라도 널 동정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슬픔도 의도되어진다고 믿는 너니까. 너의 죽음도 틀림없이 네가 원했던 것이라고 믿어도 되겠지. 오히려 축하를 해줘야 할까. 나 참, 왜 내게 이런 악역을 맡기니! 이런 말을 듣고 싶었던 거 아냐? 왜 상대방을 자꾸 숨막히게 하니? 이 세상에 너만 그렇게 답답한거 아니야. 가장 속편하게 사는 것 같은 사람도, 정확히 너만큼 사는게 힘든거야. 너는 너의 삶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고난이라고 믿고싶겠지만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만큼,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한다구. 하지만 그런 사람들 조차도 너처럼 이기적이지는 않아. 제발 좀 끙끙거리지좀 마. 잘 좀 생각해 보라구. 정신차리라구! 그 사치스럽고 역겨운 말장난 집어치우기 전까지는 날 만날 생각은 하지마. 땀을 흘리든 눈물을 흘리든 일단 행동하고 부딪치기라도 해 봐. 네가 좋아하는 그 잘난 에스프레소 처럼 쓴맛을 좀 보라구! 넌 평범한 인생을 혐오하겠지만, 넌 그런 우월감 가질 자격없어. 그저 누구나 처럼, 외로우면 슬퍼하고 돈을 벌면 기뻐하는거야. 실없이 웃는것을 두려워 하지 마. 넌 지금 게으름조차도 포장하려하고 있잖아. 그건 네가 저지를 수 있는 최대한의 위선일거야. 무엇보다도 넌 오늘 나에게 고마워 해야해. 너 스스로는 너 자신을 비난할 수 없었을테니까. 이정도 악역을 맡아준 것이 나로서는 최선이야. 더이상 아무것도 기대하지마. 난 그만 갈께. 안녕."


세상에서 가장 고상한 전 인류적 슬픔

"공공의 적?"

"응. 공공의 적."

"재미있었던것 같긴한데."

"아니, 영화얘기가 아니라. '공공의 적' 그것의 부재가 네가 게으른 이유이고, 아무것에도 의욕을 보이지 않는 이유라고. 네가 '정착 할 곳이 없다'라는 표현을 썼지만, 결국엔 붙잡고 싸워볼 만한 매력적인 적이 없다는 것에 대한 불평이나 마찬가지인게 아닐까. 우리의 인생에 갑자기 불가항력의 적이 나타난다고 생각해봐. '고난', 역경'이라는 것이 갑자기 화악- 하고 덮치는 것이지. 그 고난과 역경이 전 인류가 위협을 느끼고 있을만큼 강력한 것이라면, 아마 너는 더 큰 사명감을 가지고 덤벼들게 될꺼야. 그 것이 네가 찾고있는 절실함이 아닐까. 잘 생각해봐. 우리가 언제 단 한번이라도 '생'에 관해서 절대절명의 위기감 따위를 느껴본 적이 있어? 공복감 때문에 심각하게 절도를 고민해본적이라도 있냐는 말이야. 우리 스스로의 생존권에 대해서는 한번도 공감대를 형성해본적 없다는 얘기지. 오랫만에 친구와 만나서 과연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까? 따위를 이야기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커피맛이 별로라고 불평하고 있거나, 저녁은 어디가서 먹으면 좋을까 따위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지. 어쩌면 우리는 이미 '시대적 위기'에 대한 향수까지를 느끼고 있는지도 몰라. 펑크나 사이키델릭이 그저 하나의 장르로서 스타일로만 명맥을 유지하는것도 그때문이지. 어설프게 '저항'이나 '투쟁'을 이야기하다가는 무시당하기 쉽상이니까. 우리가 살고있는 이 시대는 말이야- 지나치게 평화로워."

"존레넌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이야기군.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서 그가 다시 '이메이진'을 부르고 있다면, 두번째 암살기도는 아마도 니가 하겠지. 엇! 어쩌면 존레논과 오노요코의 침대시위는 '평화'가 아닌 '반평화'시위에 더 어울렸을지도 몰라. 좀 더 역설적인 뉘앙스로- 그래. 어쨌든 그렇다치고- 만약 내가 게으른 이유가 세상이 너무 평화롭기 때문이라면, 세상이 변하지 않는한 난 계속 게을러도 괜찮다- 뭐 그런 심보인거 아냐? 그런 발상은 정말 게으른 사람 아니고서는 생각해내기 힘들것 같은데- 아마 3차대전이 일어나기 전 까지는 뻔뻔하게 게을러도 되겠다. 훗. 그런데 너 아무에게나 그 '평화배격론'을 주장하고 다니는건 아니겠지? 누가 들으면 널 당장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국경지대로 추방해버리고 싶어할꺼야."

"평화배격? 젠장 지나친 확대해석이나 하고있다니.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너는 네가 게으름을 느끼고 있는 상황을 '아무것에도 의욕을 느끼지 못해서'라고 분석했고, 너는 그 이유를 너 자신에게 '절실함이 부재'해서 라고 이해한것이지. 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 싸워볼만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있는거야. 말하자면 너는 너 자신을 비난하는 방식으로, 나는 내 주변을 탓하는 방식으로 말이야. 그 차이를 알겠어?"

"싸워볼만한 적이 없다니, 당장 너랑 싸워보는게 좋을 것 같은데! 큭. 그러니까 나는 나 자신이 따분해서 게으르다고 여기는 것이고, 너는 세상이 따분해서 네가 게으를 수 밖에 없다는 얘기지?"

"내 이야기가 아니라 니 이야기지. 욘석."

"그래, 어쨌든- 그런데 난, 적이 없어서 세상이 따분하다는 것에는 동의할수가 없어. 네가 말하는 '절대절명의 위기감'이라는 것이 꼭 극단적인 상황들에서만 느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든. 고통은 누구나 스스로에게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여질 권리가 있어. 행복이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하는것 처럼, 고통도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해. 예를들어서- 음. 어제 담배연기 예찬론을 펼치던 너는 갑자기 오늘 폐암 진단을 받고 들어눕게 되었다고 치자."

"아까는 존레논을 부활시키더니, 이제는 날 무덤속으로 보내버리네-"

"아. 예를들자면. 그렇다고 치자고. 그리고 나는 오늘 애지중지하던 파워북을 책상에서 떨어뜨린 것이지. 그래서 조금 찌그러졌고, 그 안에 있던 데이터가 전부다 날아가버린거야. 자- 그런 너와 내가 만나면 어떤 상황들이 예상될까. 서로의 안부를 물어보다가. 안좋은 소식을 듣게되고-"

"유감스럽게도, 네가 나에게 위로를 해주어야 하겠지."

"그래, 바로 그 전에-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암묵적으로 누구의 슬픔이 더 커다란지 경중을 따져보기 마련인데, 결과적으로 내가 데이터를 잃어버린 고난은 네가 암선고를 받은 역경에 비하면 한없이 가벼운 것이 되어버린다는 것. 그래서 내가 너에게 위로해줄 수밖에 없는 그 상황이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올바른 일이라 해도, '고통의 경중을 따지고 슬픔의 정도를 비교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는 부당하다는 이야기지. 결국 '고난'이나 '역경'은 어떤것이 더 절대적으로 슬프다 고통스럽다 이야기 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내가 암에 걸려서 죽어가는데도, 너는 나보다 먼저 운명을 달리한 너의 데이터 따위를 애도하겠다는 이야기인가? 음. 너하고 좀 더 친하게 지내려면 너의 파워북따위와 경쟁해야 하는건가."

"흐. 신난다. 그게 아니라. 네 이야기에서처럼 '고상한 전 인류적 슬픔'이 있고 '진부한 삼류 신파조 슬픔'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자신의 슬픔이 '세상에서 가장 고상한 전 인류적 슬픔'이라고 생각할 권리가>가 있다는거야. 가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세상이 따분하다는 이야기를 하고있었나."

"아마, 너의 게으름에 대해서였을껄?"

디벤즈아크리딘, 디메칠니트로사민 그리고 카본모노사이드

검지와 중지 사이에 깊숙히,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는 꼴이 되도록 담배를 피워무는것은 별로야. 검지손가락과 엄지손가락 끝으로 얌채같이 겨우 끼워들고 바짝 한모금 빨아들이며 인상을 찌푸리는 것도 별로이고.

그러면?

잘 봐. 이렇게. 담배 한모금을- 폐부까지 깊숙히 빨아들이지 않고, 일단 입에 한가득 담아두는거야. 그 다음, 이렇게- 연기의 일부분을 마치 내 영혼을 금방 사자들에게 내 주기라도 할 것 처럼 대기중에 부유 하도록 놓아두는거야. 아무것에도 의욕을 느끼지 못하는 그런 표정으로. 그러면 그 연기들은 조금은 수줍은듯 대기중에서 머뭇거리거든. 너는 잠시동안 그 영적인 황홀경을 관망할 수 있는 순간을 갖게 되는것이지. 영혼을 내 준 댓가로 말이지. 화양연화라는 영화 속에서 양조위의 머리 위를 떠돌던 그 담배연기도 마찬가지인 셈이지. 어떤 사기꾼은 그걸 보고 '영혼의 신음소리' 라고도 표현했더군. 아- 그런 영화를 상영할 때에는 흡연자들을 위한 객석을 특별히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명심해 그 영원과 같은 순간은 단 1분도 되지 않아. 다시 숨을 들이쉬어야 할테니까. 그 때에는 약간 씁쓸한 표정을 지어도 괜찮아. 왜냐하면, 네가 인지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너는 항상 생을 원하고 그것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게될테니까. 그 짧은 순간 너는 어쩌면 처음으로 너의 머리가 아닌 기관이 주관하는 너의 생을 깨닫게 될지도 몰라. 하지만 눈을 질끈 감아버리지는 마. 네가 숨을 들이쉬는 순간에도 네가 뱉어낸 그 아름다운 조화를 조금은 더 지켜볼 수 있을테니까.

이렇게?

아. 아. 너라는 녀석은 진지하지 못하구나. 그렇게 막무가내로 들이마셔버리다니. 넌 지금 네 눈앞에서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거야. 심미안적 접근이 아니라면, 화학적 분석을 시도해보는거야. 담배연기에는 네가 상상할 수조차 없는 매력적인 이름을 가진 화학성분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거든. 예를들어 디벤즈아크리딘, 디메칠니트로사민, 카본모노사이드같은 이름들은 그저 발음해 보는것 만으로도 마치 중세의 마법을 외는 듯한 묘한 매력이 있지. 또, 각각 성분들의 원래의 목적과 쓰임에 대해 알아보면 하드코어적인 쾌감을 느낄 수 있기도 해. 예를들어 최루탄의 성분인 포름알데히드, 로켓의 연료로 쓰이는 메탄올, 좀약의 성분이기도 한 나프타린, 흰개미의 독과 같은 아세닉, 심지어 사형가스실에서 사용되는 청산가리따위도 포함되어 있거든. 그 외에도 4000여가지의 성분이 900도의 담뱃불 끝에서, 열분해, 열합성, 증류, 승화, 수소화, 산화, 탈수화 등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 기체상태의 담배연기로 변하게 되는 것이지. 만약 에이젠슈타인같은 감독이 이 장면을 편집했다면, 2차세계대전의 폭격장면이나 화학테러 쇼트를 중간에 끼워넣었을지도 모를일이지.

트리플 톨 라이트워터 아메리카노

"외로워. 어딘가 정착하고싶어. 존재감이 없는 기분."

"연애하고싶어?"

"꼭 그런 의미만은 아니야."

"부정은 안하네. 존재감이라는 건 누군가를 만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잖아. 그저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믿는것 뿐이지. 존재감이라는 것을 타인으로부터 얻으려고 하는건 너무 위험해. 그리고 바보같은 짓이야. 타인은 네게 그저 너의 외부일 뿐이고, 그저 네안의 또 다른 언어일 뿐이야. 너의 기호와 취향에 의해 계속해서 분절되고 수정되어 재정립되는 관념에 지나지 않아."

"그래 알아. 누군가를 만난다고 해결 될 일은 아니지. 정말 아닐까?"

"사람들은 대게 관념적인 어떤 것을 눈으로 볼 수 있는 물리적인 수치로 환산하고 싶어해. 얘를들면 '존재감'이라는 관념에도 '무겁다' 혹은 '가볍다'라는 식으로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본능이 있다는 것이지. 누군가와 가까워진다라는 것도 처음엔 '친하게 되다'를 의미하다가도, 어느 순간엔 정말로 '물리적인 거리'가 먼가 가까운가를 가지고 따지게 되는 것처럼 말이야. 어쩌면 '존재감'을 느끼고 싶을 때에는 당장 연인과 침대 위를 뒹굴며 '무게감'을 느끼고 마는것이 더 나을지도 몰라. 그러고서 '아 나는 존재감이 있군!' 하고 만족하고 마는거지. 그건 전적으로 인간의 나약함 때문이야. 에드워드 홀이라는 인류학자는 3.6미터에서 7.5미터 정도의 거리는 공적 관계이고, 45센티미터 정도의 거리는 가장 친밀한 관계의 거리라고 말하더군. 정말 우스꽝스러운 일이지."

"그래? 그렇다면 큰일인걸, 내가 생각하는 가장 친밀한 사람은 수천킬로미터 떨어져 있으니까. 그런 건 우주적 관계 쯤 되는건가. 그리고. 너는 좀더 떨어져 앉아야겠다."

"어이쿠. 하하- 어쨌든 그러니까 내 말은, 네가 누군가와 가까워진다고 해서, 혹은 누군가와 침대위를 뒹군다고 해서 그 '존재감'의 문제는 해결될리 없다는 것이지."

"그래. 음. 거리야 어찌되었건, 나는 요즘 어딘가 단단한 바닥위에 한발짝 내려서고 싶은건 분명해. 그리고 외로움. 그 외로움은 단지 지금 내곁에 아무도 없다고 느껴져서 그런 것은 아닌것 같애. 어딘가 단단한 지반 위에 한발자국 내딛으려고 하는데, 그건 전적으로 나 혼자서만 해야하는 일이잖아. 그 사실이 참 외로운 일인 것 같애. 홀로 내딛어야 하는 한 걸음. 그래- 진짜 문제는, 그것이 외부에 있느냐 내부에 있느냐 하는 문제도 아니고, 가까운가 먼가의 문제도 아니고, 애초에 어딘가 내려선다는 것, 그게 두렵다는 거겠지. 어쩌면 그건 어른이 된다는 것과 관련이 있는걸까? 왜 어른들이 말하잖아 '네 나이면 이제 자리를 잡아야지' 라고. 뭔가에 전력투구 하는 것, 변치않는 신념을 갖는 것, 결혼이라던가 하는 그런거 말야. 그런 속박과 구속은 확실히 두려운 일이니까.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정착'이라는 것이 정말 그런 속박을 의미하는 것일까?"

"잠깐, '정착'이라는 어휘를 유지하는게 좋겠어. 뭔가 이야기도 하기 전에 '정착'이라는 말을 '속박'으로 바꾸어버릴 이유는 없잖아. 차라리 '정착'보다 '멈추다'라는 말이 더 객관적이려나? 또 '내려서다' 라는 표현도 이미 뭔가 평가절하되는 뉘앙스를 가지고 있잖아. 어쨌든 난 그게 항상 불만이었어. 그런 불완전한 언어체계가 말이야. 정확히 말하자면 '언어를 통한 사고의 불합리함' 말이지. 같은 것을 두고도 그저 결정적인 자리의 단어를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서 의미가 너무 쉽게 바뀌어버리거든. 잘 되고 있을 때에는 착한 언어들로 좋게 생각하다가도, 마음이 안들면 금방 잔뜩 비꼬인 말로 바꾸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원했던 일들도 마치 원치 않았던 일이었다는 식으로말이야. 무슨얘기 하고 있었지? 그래, 두려움. 그래서 내 말은, 속박이든 정착이든 '어딘가에 그만 멈춰서고 싶은' 그 성향, 그 의지 자체에만 주목 하자는 이야기지."

"응. 그건 그래. 잘. 짚어. 주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불완전한 '언어'로 생각도 하고 선언도 하고 약속도 하지. 그리고 그런 것들에는 늘 말썽이 따르지. 반면 본능적인 행위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거나, 소변이 마려우면 소변을 보는식의 일들은 참. 명쾌한것 같애."

"섹스또한 그렇지. 나는 그와중에도 말을 많이 하는 편이긴 하다만."

"으응? 외로운건 내가 아니라, 너! 아닐까?"

"응? 아니. 어쨌든 자- 내가 너의 두려움에 대해 설명해 볼께. 그 이유는 이런게 아닐까. 자, 잘 봐. 여기 카페라떼라가 있고, 그리고 여기엔 트리플톨라이트워터아메리카노가 있지. 넌 카페라떼는 물론, 카페모카도 종종 마시긴 했지만, 어느날부터는 트리플톨라이트워터아메리카노를 마시기 시작했어. 쓴맛을 알게되어서일 수도 있고, 남들은 잘 먹지 않으니까, 혹은 그저 예쁜 캐쉬어 앞에서 유창하게 특별한 주문을 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르지. 그러던 어느날, 이 커피맛에 심취해 있던 너는 이벤트에 당첨 되어 한가지 음료를 평생! 먹을 수 있는 쿠폰을 받게 된거야. 단 한가지 음료만을. 그래서 넌 그 쿠폰 위에 그 한가지 음료의 이름을 적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거지. 단 한가지의 음료만을! 하지만 너는 아마도-"

"망설이겠지. 하지만 뭐. 단연. 트리플톨라이트워터아메리카노-"

"흐흐. 그래 그러시던가. 하지만 언젠가는 카라멜마끼아또같은 단맛도 느끼고싶을테고, 가끔 배고플때엔 카푸치노를 마시고 싶을테니까- 넌 펜을들고 한참을 고민해야 하겠지. 네가 비록 지금은 그 트리플톨라이트워터아메리카노의 쓴맛을 최고로 생각한다해도말이지. 예가 좀 웃긴것 같긴 하지만, 시사하는바가 아예 없지는 않아. 내가 보기에 넌 마치 인생의 노선을 계산대 앞에서 음료 고르는것처럼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으니까."

"그래 무슨말 하는지 나도 알아. 아직 절실하지 않아서, 아직 배고프지 않아서 이런고민도 할 수 있는것이라고 얘기하고 싶은거겠지. 두려움이 아니라 오히려 여유이고 게으름이라고 말하고 싶은거겠지. 너마저. 며칠전에 친구에게 이런 푸념을 했었어. 요즘의 나는 '의욕에 대한 의욕조차 의욕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빠져있다고. 아무 일에도 의욕을 보이지 않아- 네 말대로라면 나는 어쩌면 절실함을 갖기 위해서, 배고픔을 맛보기 위해서, 곤경에 처하기 위해서 쓴맛을 좀 더봐야 한다는 이야기잖아. '인생이 너무 달다. 그러니 엑스트라샷을 하나 더 추가해야겠군!' 이건 더 웃긴 이야기가 되어버리잖아."

"음. 거 말 되는군. 유브 갓 메일이라는 오래된 영화 기억나? 갑자기 생각나는게 있는데, 톰행크스의 일상을 보여주는 대목에 이런 독백이 나와 "도대체 자신이 뭘하며 살고 있는건지 자기가 누구인지 도통 모르는 사람이 2달러 95센트를 내고 사가는 것은 그저 한 잔의 커피가 아니라. 확실하게 정의된 자신에 대한 느낌, 즉, 큰 컵에 담긴, 카페인 없는, 카푸치노라는 정체성이다." 라고."

"아! 잘도 기억하고 있군, 노라 애프런이라는 사람이 각본을 썼던가- 시애틀의 잠못이루는 밤을 썼던- 그게 우리 고등학교 때 영화였으니. 지금 우리의 비유도 꽤 낡아빠진거였군. 쳇."

"훗. 질투하긴- 그런데 한가지 의문이 있어. 왜 자꾸만 너는 네가 지금 계산대 앞에 서있다고 믿는걸까. 왜 무엇인가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믿고 있는는거지? 네가 단지 육개월 동안 수입이 없었기 때문에? 아니면 누군가가 자꾸만 너에게 '손님 주문하시겠습니까?' 라고 귀찮게 물어보기라도 하는거야?"

"글쎄- 모르겠어. 내가 손님이고, 내가 계산대이고, 내가 점원이기도 한것같애. 어쩌면 좋을까. 그저 좀 어디엔가 부딪치기라도했으면 좋겠네- <홀로 내딛어야 하는 한 걸음> 정말 그런걸까. 우리는 지금 무슨이야기를 했던거지?"

"글쎄, 너의 게으름에 대한 이야기였던가?"


친애하는 무스타파 몬드씨께

저의 책상 위에는 스피커며 램프며 핸드크림따위가 온갖 케이블들과 한데 엉켜 널부러져 있습니다. 그 앞에 앉은 저는 도도하게 눈을 내리깔고 왼손 엄지손가락으로 오른손 엄지손가락 손톱을 무심하게 긁적거리고 앉아있습니다. 넘어져있는 스피커는 세워져있어야하고, 어정쩡하게 천정을 바라보고있는 램프는 다시 책상을 향하도록 구부러져있어야 하고, 창틀에 아슬아슬하게 세워져있는 독서대는 제자리에 놓여져있어야 하고, 달력은 두장이나 더 넘겨져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모든것은 제자리로, 원래의 상태로 돌려놓아져있어야하지 않나요. 심지어 방을 비추던 전구가 나간지 한달이 됐는데도 방이 어두운 그대로 지내고 있답니다. 저는 왜 이토록 무심해진걸까요? 넘어진 스피커를 세우고, 뒤집어진 램프를 구부리고, 독서대를 제자리에 놓는것에 저는 왜 관심이 없을까요? 새로운 전구를 사와서 포장지를 벗기고 발끝에 힘을주고 서서 전구를 갈아 끼우는 일에 왜 관심이 없을까요? 이상한 일이에요. 저는 저 자신에게조차 관심이 없는것같아요. 아니, 저는 저 자신으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걸까요. 저는 끊임없이 저 자신을 바라보고 있지만, 아무런 말도 저에게 해주지 않습니다. 아니, 저는 저를 바라보는 저에게 끊임없이 말을 하지만, 저는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습니다. 뭐랄까 저는 그 모든 광경을 목격하는 동시에 목격당하고 있습니다. 이해하실 수 있나요? 저는 저 자신을 원망하고 있는것일까요? 아니면 이 세상을 원망하고 있는걸까요? 아아- 아니 어쩌면 당신을 원망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요 당신도 저에게 관심이 없으니까요. 나를 바라보는 나의 얼굴이 너무 차갑습니다. 그가 뭘 원하는지 알수가 없어요. 이런 상태는 누구에게나 한번쯤 오게되어있는건가요?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예전처럼 변할수 있을까요? 아아- 제발 대답해주세요. 모르겠어요. 정말 저는 길을 잃은것같아요.

당신의 무나 로부터

게으른자에 대한 연민

"요즘 어떠니?"

"게을러요."

"허허. 여전하구나."

"네 정확히 보셨어요. 형을 만나고 나니, 그게 '여전한' 것이었다는 것을 새삼 또 깨닫게되네요. 게으른데다가 여전하기까지하다니 제길-"

"왜 게으르다고 생각하는데? 지난번에도 그렇게 말했던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 넌 계속 뭔가를 부지런히 찾고 있는 것 같거든. 하긴- 정말 네가 게으르다면, 날 만날 때마다 게으르고싶지 않다는 얘기만을 했을테고, 그래서 내가 너를 게으르지 않은 녀석으로 기억하고 있는것일 수도 있겠다. 게으른 자아에 대한 성찰에 부지런한 녀석. 이라고 하면 좀 위로가 될까."

"위로가 되네요, 그럼 저는 앞으로 게으름을 추구해 볼까요. 혹시 모르잖아요, 나중에 나태론 이라던가, 게으름의 역사 라는 제목의 책을 써서 유명해질런지. 사실 며칠전에 친구를 만났는데, 친구가 세번이나 '너는 게으르다' 라고 정의 해 줬었거든요."

"그 얘기를 듣고 혹시 기분이 나빴니? 그렇지 않았다면 넌 정말 좋은친구를 뒀구나. 그럼 이 다음에는 게으른데다가 그 것이 여전하기까지 하다 라는 부연을 추가해야 겠구나."

"게으름이란 뭘까요? 아- 그건 그렇고, 이런 질문을 누군가에게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짜릿한걸요? 어쩌면 이렇게 다시 질문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소크라테스 선생님 게으름이란 무엇입니까?'"

"난 싫다. 소크라테스는 대머리에다가 못생겼었다잖니. 난 그렇게 극적으로 죽고 싶지도 않아. 내가 소크라테스라면 너에게 다시 이렇게 묻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성실함은 무엇입니까?' 라고. '게으르다'와 '성실하다' 라는 말 속에 이미 '좋다', '나쁘다' 가치판단이 분명히 매겨져 있으니까. 일단 그 것에 대한 판단부터 이야기하자는식으로 말이지. 아니 그런데 넌 이런얘기를 하려고 만나자고 한거였냐. 난 그래도 소크라테스 보다는 바쁜 사람이다."

"재미 없으세요? 하긴, 얼마전에 플라톤의 '국가론'을 읽으면서 '와 정말 이 사람들 밤새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 할 작정인가?' 하면서 중간에 책을 덮었던 기억이 나네요. 사실은 여기 오기 전에 버스 안에서 생각하던게 있었어요. 내가 누군가에 '나는 게으른 사람이다' 라고 말하는 것과 '나는 게으른 사람이 되고싶다' 라고 말 하는 것이 어떻게 다른가 하고 말이에요. 조금전에 형이 말한 것처럼 그 것이 이미 가지고 있는 '좋다'와 '나쁘다'라는 선천적, 선험적 가치에서 탈출하기 위해 저는 그런 방법을 쓰는 것이죠. 긍정적인 것을 지양하고, 부정적인 것을 지향하는척 하기. 예를들어 지난번에 제가 한번 말씀드렸던 '슬픔의 추구' 도 같은 목적인거죠."

"응 기억나는 것도 같다만, 그래 슬픔을 추구하고도 살아지더냐?"

"모르겠어요. 분명한 것은 점점 더 모호해져만 가고, 모호해지는 덕분에 사소한 감정들에도 의심하게되고- 불구자가 된 느낌이랄까. 어떨 때에는 '일반'을 초월한 것 같아서 우쭐하다가도, 어떨 때에는 '일반'에서 소외된 것 같아서 우울하기도 하고 그래요. 그렇다고 제가 그런 고민끝에 슬픔추구권을 위한 그럴싸한 선언문 따위를 작성하는 것도 아니고, 결국엔 누워서 발가락이나 까딱거리며 '나는 왜 사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게되는거죠. 그러다보면 결국 그 꼴에 대한 총체적인 결론으로써 '아- 난 게으른거군.'이라고 되네이며 탄식하게되는 것이죠. 헌데 그 결론을 항상 한심하게만 바라보기 싫더라구요. 그게 더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아! 난 게으른 사람이었어!' 라고 외치면서도 환희같은 것을 느낄 수는 없는걸까- 하고 생각하기 시작한거죠. '드디어 난 게으른사람이 되었어!' 라고 신나게 춤추는 사람이 있다면-"

"미친거지."

"네. 미친거죠. 그럼 또 '아! 드디어 미쳤구나' 하면서 만족하는거죠. 하여튼 그래서 그 '게으름을 처음으로 <획득>한 자'는 게으름에 대한 가치의 전복을 꿈꾸게되는거죠. 세계평화를 위해서 그는 게으름의 신앙을 창시하는거죠."

"그건 또 무슨소리냐."

"모든 사람이 게으름을 추구하는 그런 세상인거에요. 게으름이라는 가치가 절대적인 신앙이, 사상이 되어버린 사회이기 때문에, 아니 어쩌면 절대적 가치라는 것이 없는 시대인지도 몰라요, 모든 면에 있어서 게으르니까요. 게으름의 추구가 곧 구원의 길인 그런 세상이죠. 일하지 않고서도, 돈을 모으지 않고서도, 소비하지 않고서도 만족하며 즐겁게 사는 사람들이 가장 추앙받는 세상. 심지어 국가들은 자원확보를 위한 의욕조차 갖지 않게되어버린 시대- 그리고-"

"미안, 나 잠깐. 화장실 좀 갔다올께."

"네."

**

"그래서? 동굴에서 불을 지피고 생활하던 수렵생활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야기였던가? 아닌가? 요즘 네가 불가에 입문했다고 이야기 하던중이었니?"

"에이- 아무 이야기도 아니었어요."

"아니야, 뭐 재미가 없진 않은 이야기였는데- 조금 전까지 세계평화를 외치던 놈이 그렇게 금새 의기소침해지면 쓰나. 화장실에서 생각을 해보니, 네가 말하는 '게으름의 추구'를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분발하여 부지런해져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더구나. 게다가 게으른 넌 지금 '너 자신이 게으르다'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 먼 곳까지 기어나왔잖니. 게을러지기 위해서 좀 더 분발해야겠는걸."

"많이 부족하죠."

"하나 물어보자. 네가 아까부터 나를 만나서 '게으름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만 했던 이유는 뭐겠니?"

"글쎄요, 모르겠어요 대답해주세요."

"녀석- 생각도 안 해보고- 게으르긴. 넌 아까 버스 안에서조차 그 생각을 했다고 했잖니. 너는 그저 싱겁게 '게을러요' 라고 말하는 건 싫었던거 아니겠니. 그 말을 하기 위해서 너는 결국 '세계평화를 위해서 게으름을 추구한다' 라는 별로 재밌지는 않지만 엉뚱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게 된거지. 나는 네가 나를 위해 그런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 내가 알기로 너는 그럴 만큼 이타적인 사람은 아니니까."

"이기적이죠."

"응. 그래서 너는 너 자신을 위해서 무엇이든 표현해야 만족하는 사람인데, 그 표현이 그저그런 진부한 것이 되도록 놔두지도 못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지. 진부한 표현이 되지 않기 위해 너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겠니? 네가 만약 게으름에 관한 그림을 그려야 했다면, 그 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형식과 모티브를 찾으려고 했을 것이고, 그 것에 관한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면 그 것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플롯의 시나리오와 가장 적합한 촬영기법을, 필름의 종류와 조명따위를 생각해야 했겠지. 어쩌면 너는 오늘 집에가서 게으름에 관한 글을 쓰느라 몇시간이고 타이핑을 해야할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러니까 내 말은..."

"부지런하다."

"그렇지. 너는 부지런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지. 어쩌면 항상 부지런해야 한다고 느낄테니 항상 게으르다고 느낄지도 모르고."

"음 부지런하다고 칭찬을 들은 것인지, 게으르다고 핀잔을 들은건지 도무지 모르겠군요."

"뭐. 결국 게으르다는 이야기였어."

"음."

칠천원어치 生에 대한 의욕

"정말이야?"

"응."

"정말?"

"어-"

"정말이지?"

"그래! 욘석아 너는 그렇게 꼭 세번을 물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거니? 모든 사람들이 너 처럼 스스로의 결정에 대해 불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마."

그래. 재미있었다니 다행이다. 난 사실 재미없었거든. 영화 중반에 이미 반전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뻔히 보였거든. 기억 안나? 반전이 이루어지기 한참 전에 극적인 하나의 미장센이 이미 결정적인 범인을 지목하고 있었는데 말야."

쳇. 미장센 좋아하시는구나. 반전이 예고된 영화에 칠천원을 지불하고서 너는 분명 영화를 보는 내내 그것을 예측하느라 정작 영화에는 몰입하지 못했을테지. 내 생각에 너는 영화를 보기 전부터 이미 그것을 깎아내릴 준비부터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가만. 너는 근데 왜그리 사사껀껀 의심이 많니?"

"글쎄, 그건 말이지 예기를 하자면 길어. 감정이라는 것은..."

"어휴 또 그 얘기 하려고? 감정. 감정은 의도되어진다. 그 얘기를 몇번을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래 네가 말하는 '감정은 의도되어진다' 라는 명제와 지금 네가 영화를 보고 돈 아까워 하는 것과 무슨관련이 있다는 거야? 들어나보자."

"예민하긴. 쯪. 그래 어디한번 들어보기 전에 질문하나 하자. 넌 '의도된 감정' 이라는 것이 부도덕하다고 생각하니? 예를들어, 그럴리는 없겠지만, 너를 좋아하고 있다고 믿었던 한 남자가 사실은 모든 여자들에게 같은 양의 미소를 던지고 같은 품질의 친절을 베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화가나는일이 아니겠어- 예가 좀 선정적이긴 하다만."

"'같은 품질의 친절' 좋아하는구려. 대답하기 전에, 네 질문 속에서 '당연히 부도덕하지' 라는 대답을 얻고자 하는 석연치 않은 의도가 강하게 풍기는구나. 그래, 네가 원하는 대답으로 격한 결정을 하도록 하지. '그걸 말이라고 해! 의도된 감정은 부도덕하지! 그런걸 아마 위선이라고 하지 않던가?' 잘했지? 바라는 대답 격하게- 대답하기 놀이. 어디 준비 된 다음 이야기를 해봐."

"좋아. 역시 너하고의 대화는 언제나 만사가 수월하구나. 에- 그러니까. 음 조금 복잡하군. 아 아 기다려봐 이야기 할 수 있어. 그래 그러니까 관계 속에서 우리들은 종종.."

"욘석아. '우리들은' 이라고 말하지 마. 제발. 어떻게든 일반화하려는 저 심보 으휴."

"어. 어. 그러니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관계들 속에서 <나는> 종종, 아니 늘 그렇지만 누군가는 상처를 주고, 누군가는 상처를 받기도 하잖아. 그런데 내가 누군가로부터 감정적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그 것에 대한 보상을 바래서는 안된다는 거야. 그럴 권리는 없다는 거지."

"그렇게 이야기 하는걸 보니 그러는 너는 상처를 주는 쪽이라고 생각하나보네. 쳇. 넌 아마도 이런 얘길 하려는것 같은데- 과실은 상처를 준 쪽에 있는것이 아니라 상처를 받는 쪽에서 일방적으로 '감정이 진실되다는 신뢰'를 준 쪽에 있다는 식의, 그런 이야기- 그리고 네가 아까 말한 예에서 처럼, 어떤 남자가 나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것은, '촌스럽게 순순히 믿었다' 라는 데에서부터 이미 '상처받을 준비가 되어있다.' 라고 말하려는거 아냐?"

"어. 응. 휴. 그러니까 내 말은,"

"으악 싱거워. 뻔해. 진부한 결론!"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누군가로부터 기만된 감정 때문에 상처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마치 영화가 재미 없었다고 해서 애초에 지불했던 칠천원을 돌려달라고 티켓부스에서 떼를 쓰는 사람과 다를게 없이 구차한게 아니냐는 거지."

"교묘하게 연관짓는 솜씨가 마음에 든다. 그래서 애초에 네가 질문했던 것에 대한 대답은 뭐야? '의도된 감정은 부도덕한 것이 아니다.' 라는 결론?"

"근데, 그저 그런 결론만 얘기하려던 것은 아니야. 난 그게, 그러니까 그런 생각을 기반으로 가지고, 사는 사람은 모든 것들에 있어서 굉장히 부자연스럽고 거북한 삶을 살게 된다는 거지."

"그게 뭐고, 모든 것은 뭐야 도데체. 아직도 그 버릇 못고쳤니? 대명사로만 말하기야? 오랫만이라 반갑긴 하다만."

"그랬나? 응 그러니까, 나는- 그래 내얘기야. 제길. 나는 말이야 요즘 그런 사고방식. 그러니까 '감정은 의도되어진다' 라는 사고방식 때문에 정말 곤경에 처해있어. 거의 모든 관계에 있어서, 누구를 만나게 되든 도무지 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는거라. 예를들어 어떤 일 때문에 고민하고 슬퍼하는 친구를 만났을 때, 그 친구를 동정하며 안쓰러워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 친구보다 더 슬픈 내 이야기를 꺼내서 위로해줘야 하는건지 그런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느라 이상하기 짝이없는 표정과 말투가 되어버린다는 거지."

"그건- 네가 원래 말을 잘 못해서 그래. 하하 얼굴표정 변하는 것 좀 봐. 근데 그건 전적으로 네 관점에서 다른사람을 보기 때문인거 아냐? 네가 말하는 그 상황은, 그 슬퍼하는 친구 또한 자신이 슬퍼하는 감정을 스스로 연출했을수도 있기 때문에, 그것에 동조해 주어야 할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알 수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잖아. 휴- 숨 한 번 쉬고. 처음의 비난으로 돌아가자. 넌 왜그렇게 의심이 많니?"

"그래. 그래? 그런가? 아니야. 아- 아 내 논점을 흐리지 말아줘. 하던말 계속 하고 말테야. 근데, 그게 관계 속에서의 부자연스러움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래 그런 의심많은 성격 탓에 말이지. 나 자신에 대한 불신도 굉장해서- 도데체 한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기분이라는 거야. 나는 '감정이 의도된다' 라는 생각과 더불어 '의지'나 '의욕' 또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할 지경이거든."

"그건- 니가 워낙 게을러서 그래."

"근데, 난 어려서부터 TV에서 방영되는 인간시대류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누구나가 자신의 삶에서 인간시대 주인공들처럼 극적인 계기를 가져야만 하고, 극적인 계기를 통해서 자신이 미치도록 좋아하는 일을 당연히 가지게 되는 것으로 생각했거든, 그런데 난 안그렇더라고. 좋아하는 일은 고사하고 그 어느것에도 의욕을 보이지 않아. 내겐 '무엇'에 의욕하느냐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어떻게' 의욕을 가질 수 있느냐가 더 시급한 문제가 되다보니까 '의욕에 대한 의욕'조차도 의욕해야 하는게 아닌가 하고 생각할 정도라니까."

"그래. 그래. 넌 게으른게 분명해. 다큐멘터리는 보통 60분짜리가 많지. 60분 안에 한사람의 인생을 '볼만하게' 표현 하기 위해서 방송국에는 방송작가라는 직업이 있고, 영상 편집자가 있는게 아니겠어? 싱거운 계기도 극적으로 만들어질테고, 분명 적당히 극적인 플롯에 그들의 인생을 끼워맞춰야 했겠지. 그런것만 보고 자랐으니 쯪쯪. 근데 말야, 전에 너하고 같이 본 영화 말야 '웨이킹 라이브즈'. 거기서 누군가 말했지. 가장 일반적인 인간의 특징은? 공포인가?"

"게으름인가- 라고 말했지."

"그래. 어휴 잘한다. 넌 게으른거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날 우리는 벡스 6병을 하나 더 준비해야 했어. 하여튼, 난 요즘 우리 어머니를 보면서 느끼는게 한가지 있어.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어머니가 가끔 나를 서운하게 만들기도 하거든. 한번도 나에게 그런 요구를 해본적이 없는 분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나니까 경제적인 수입원이 없다는 것에 대해 너무나 불안해 하시는거야. 내가 보기에 통장에 잔고는 넉넉한데도 말이지. 그래서 그러신지 가끔은 내게 무리한 요구를 하시기도 하고, 다그치기도 하고 그러시거든."

"무리한 요구가 뭔데? 그리고 너희 어머니는 그럼 예전엔 그렇지 않으셨어?"

"응. 무리한 요구란 제발 좀 정.상.적인 삶을 살라는 강요지. 뭐 얼른 돈 벌고 자리 잡으라는 얘기지. 원래는 아버지가 그런 분이셨지. 아버지가 워낙 그 역할, 늘 다그치고 혼내는 악역을 수행하셨으니까- 어머니는 늘 내편이셨거든. 그런데 난 지금 애처럼 그런 어머니가 밉다는 얘기를 하려는건 아니야. 잘 표현하지 않았던 어머니, 당신의 위기감, 불안함 같은 것들에 대해서 그제서야 그런 방식으로 느낄 수 있었다는 거지."

"그렇구나."

"괜히 침울해질 필요 없어. 그러고보니 너 정말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그 어정쩡하게 찡그린 그 표정은 뭐니. 난 지금 우울한 감정을 의도한게 아니니까 너도 이 기회를 통해 자연스러워져보렴. 그래. 그래- 잘한다. 그러니까 거기서 내가 느낀건 그거야. 이런 나도 대명사로 말하네? 어머니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의 생에 대해 느끼시는 불안. 어쩌면, 생. '생 자체에 대한 불안.' 자 따라해봐 생."

"생!"

"응 생을 살고 있는 것 자체가, 그것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생에 대한 강한 의욕'이 아니고서는, 그것이 없고서는 불가능한게 아닌가 싶었다는 거지. 그 생이라는 것이 60분짜리 인간시대인지 인간극장인지에 나오는 삶처럼 극적일 필요는 없다는 거지. 극적인 인생. 열정적인 인생. 뭔가에 미친듯이 빠져있는 인생만이 강한 의지와 강한 의욕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라는거지. 그저 살고있는 것 만으로도-"

"응. 그저 살고 있는 것."

"응 그래서 내가 하고싶었던 말은."

"뭔데?"

"넌 몹시 게으르고 나약한 사람이라는 거지. 어쩌면 너는 게으른 너를 구제하기 위해서, 네가 생을 살기 위해 충분한 만큼의 의욕을 가지고 있다고 외칠 수 있기 위해서, 지금 당장 티켓부스로 돌아가서 영화가 재미없었다고 구차하게 발을 동동 구르면서 환불을 요청하는 성의를 보여야 하는게 맞는지도 모르지."

"쳇."


요술쟁이의 생

어떻게 하는 겁니까?

뭘. 말입니까?

어떻게 하는 거냐구요. 그 요술 말입니다.

요술이요? 난 요술같은거 부릴줄 모르는데.

당신 그 생 자체가 내겐 요술입니다.

지금. 시비거는거요? 내 생이 어떤지 당신이 어떻게 알아?

모르신다면 설명 해 드리죠.
첫째, 당신은 어제 출근했습니다.
둘째, 당신은 오늘도 출근했습니다.
셋째, 당신은 내일도 역시 똑같이 그렇게 할 것입니다.
넷째, 아마도 당신은 앞으로도 한결 같은 사람일 것입니다. 맞습니까?

그런데.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거요?

모르시겠다면 다시 설명 해 드리죠.
첫째, 당신은 어제 어떤 연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런 감정 정말 다시 없을줄 알았는데.. 어쩌지?"
둘째, 당신은 오늘 어떤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제 한번 밥이나 한번 먹어야지 으응?"
셋재, 당신은 내일 어떤 부모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밥 먹었어요, 먼저 주무세요, 내일 일찍 나가야되요"
넷째, 당신은 앞으로의 당신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아니야, 이게 맞아, 다들 그렇게 사는거지"
라고.

뭐요? 당신 뭐야? 누가 당신보고 내 생에 대해서 마음대로
개. 지껄여 달라고 했어? 당신 미쳤구만?

난 당신 등 뒤에 난 구멍으로 당신의 모든 것을 지켜볼 수 있었거든요.

뭐요? 구머-엉? 당신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고,
구멍이고 뭐고 마음대로 갖다 붙이나 본데, 어디한번 마음대로 해보슈.
그래 지켜본 내 생이 어떻다는거요?

당신은,
생을 가로질러 나아가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언제나 똑같은 고도계 속에서
또다른 당신 자신을 마주치며 느끼는 환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악몽조차 진부하게 받아들일 만큼 주기와 궤도에 대해서도 알고 있습니다.
당신 주변의 관계라는 것은 그저, 말코비치씨와 또다른 말코비치씨가
말코비치 말코비치 라고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 또한 이미 알고 있습니다.
절대로 당신 내부에서 당신 스스로를 가만히 두지 않는 또 다른 당신 자신과의
반목, 배신, 그리고 불신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의미가 없음 조차 의미가 없다는 것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 것을 원하는 것, 모든 것이 허용 된다는 것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을.

그 모든 것 들을.

그 모든 것 들을 알고 있으면서, 처음에 내가 당신에게 이야기 했던 것 처럼
당신은 계속해서 첫째, 둘째, 셋째, 넷째를 하고 다시 첫째, 둘째, 셋째, 넷째를 하고 있습니다. 그 것이 당신이 내게 가르쳐 주어야 할 요술입니다.

요술?

요술.

좋소. 알겠소. 무슨말인지.
난 그 요술에 대해서 모르오.
그리고 난 그 요술에 대해서 알고 있소.
하지만 당신은 그 요술을 결코 알아 낼 수 없을 것이오.

왜?

왜. 왜냐하면
그 요술에 대해서 묻는 사람은,
그것을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이오.
그것에 대해서 한 번도 묻지 않는 사람.
그 사람 만이 그 대답을 알고 있소.
난 그것에 대해서 한번도 나 자신에게 물어본 적 없소.

디그리 제로

"얼마나 되니, 아는사람이- 너를 안다고 하는 사람들 말야."

"글쎄 메신저 아이디가 너뎃개쯤 되고 그중 두개의 아이디는 각각 100명쯤 등록되 있는것 같은데?"

"그렇구나 그러고보니 메신저 컨텍 리스트 라는게 인간관계의 양적 척도로서는 꽤나 리얼타임으로 적절하겠다. 그래 내가 하고싶은 얘기는 뭐냐면- 거시적으로 보자고. 혹은 우주적 관점에서-"

"뭐? 우주적 관점?"

"그래 여긴 어크로스더 유니버스니까 말이지;; 우주적 관점이라는게 인력으로 가능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생을 놓고 봤을때. 스스로 생각하기에 꽤나 중요한 순간들이 있잖아 '나'라고 하는 점과 '너'라고 하는 점이 거의 부딛칠 정도로 가까이 머무는 그. 순간말야. 음-"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지는 거? 그게 왜 꼭 가장 중요한 순간인데?"

"그건, 뭐 내가 하려는 이야기에선 중요한게 아니니까 일단 바이건스-"

"그래."

"고등학교때 보던 함수그래프들 있잖아 무한대에서 시작해서 끝없이 0 이라는 값에 다가가려는 듯한 그런 곡선, 그런걸 떠올려봐- 그 가까워지는 순간 말야, 어쩌면 스며든다는 표현이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 가늠할수 없는 순간에 끝없이 <반>작용하는 힘에 대한 설명을 하려는거야. 0 이라는 값에 가까워지지 않도록 하는 그 힘 말야. 너무 거창하게 얘기를 하고있는것 같아서 조금 걱정되지만- 끝까지 들어봐. 그 영원히 가까워지려는 힘의 정반대로부터 작용하는 그 영원히 0 을 지양하는 그 힘은. 되게 원초적인 어떤 힘과, 되게 싸구려-한 감상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라는거지. 원초적인 그 힘이라는건, 일종의 본능같은건데 말야 '우주미아'라고 들어봤니? 내가 종종 얘기했던것 같은데. 모른다고? 음- 무나넷시절에 주절주절 어딘가에 많이 적었던것 같은데 히히 말하자면- 우리는 태어날때부터 홀로이어야만 생을 버텨내거나 혹은 살아갈 수 있는 존재 이다' 라는거야- 그리고,'싸구려 감상' 이란게 뭔지 궁굼하지? 그건 설명하자면- '자아의 개별성에 대한 향수나 동경' 이라고 하면 될까? 왜 싸구려 감상이라고 <치부>해버리고 있냐면 말이지. 결국 '난 정말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것 같아' 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 뿐인데, 스스로 생각하는 평범한 사람에 대한 가치평가라는것도 고작해야 메신저 리스트에 있는 (사실은 잘 알지도 못하는) 200명 남짓한 사람들을 통해서 얻은 감정적 통계치일 뿐인데다가. 그런 개별성에 대한 획득이란것도 어떤 진지한 자신만의 세계관과 아이덴티티의 구축이라기 보다는 그저 <뭔가 달라야한다>에만 집요하게 촛점이 맞춰진 것이라서, 그 200명 안에서만 슬쩍 살펴보더라도 '나'라는 존재가 평범한 '너'라는 존재안에서 조금 색깔과 width height값만 수정된 베리에이션일 뿐이라는거지. 그래서 '싸구려 감상' 이라고 '치부' 하고있는 것이구. 그런 싸구려 감상과 우주미아적 본성이 너와 나의 거리가 0이 되어버리는 사태를 막기위해 필사적으로 자기 자신을 달래고, 설득해서 결국, 평행을 만들어 내거나. 상대방을 밀어내거나 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이야기야."

"네 말은 그러니까.. 음"

"으응 그래 이야기가 좀 주절주저리 되버린 감이 없지않아 있어. 결국 내가 하고싶었던 얘기는 우주미아적 본성은 어찌할수 없는 문제이거나, 애초에 그따위 본성은 없다고 치더라도 겨우 '싸구려-한 감상' 때문에 0을 이루어 낼 수 없다는건 또 좀 서글픈 일 같다는 이야기였어."

"응 그래 그거. 서글픈 그런 감정 이해가 근데말야... 근데 왜-"

"그런데 왜 나에겐 관계에 있어서 지향점에 0 이어야만 하느냐고? 글쎄 그건 아직은 잘 모르겠어. 그리고- 아까 말했던 그 '자아의 개별성에 대한 향수나 동경'이 향수나 동경으로서만이 아니라 진짜 진짜 진지한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하려는 힘이라면- 그런 힘에 의한 평행과 멀어짐의 상태는 그저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고 "

"말뚝뚝 끊긴- 그 싸구려 감상론에 대해 특히 주절거린걸 보니 약간 네 스스로에대한 변명을 나름대로 우회적으로 일반화 해버려 정당화 하려는 너의 음흉스런 심보가 엿보이긴 하다만- 그래 나이 들수록 더 그런 담담한 슬픔같은걸 많이 느끼게 되- 뭐라고했었지? 뭐? 무슨 향수? 싸구려 감상? 그런건 잘 모르겠다만- 다치지 않겠다고, 변변찮은 자존심같은것들 때문에 점점 사람 사귀기가 어려워지고, 이유도 모른체 멀어지는 일들이 생기는것 같아-"

"그래 그런데 정말 어쩌면. 거리=0 을 지키는게 맞는지도 몰라-
'너'와 '나'가 중첩되는 그 0이라는 지점이 어쩌면, 어쩌면 어떤 완성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어떤 파멸일지도 모르겠어. 어떤걸까? 그. degree=0 라는 지점은-"

오랫만에 만난 A와 B의 서먹한 대화.

B 무슨 생각 해? 왜 아무말도 없냐.

A 네가 그 질문을 던질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어

B 고작 예측했다..
라고 생색내기야?

A 응 사실 어떻게 보면 대부분의 것들이 예측 가능하지만...

B 예측이라는건 미리 알고있었다 라는걸 확인할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한 건데 넌 미리 이야기 하지 않았잖아. 네가 예측했었다는 걸 네가 먼저 말하기 전에는 아무도 알수 없으니 그건 예측이라고 할 수 없지.

A 그. 그렇지. 여전히 예리하긴.. 하지만 대게 사람의 감정을 예측 한다는 것은, 그것 자체가 '내가 네 위에 있다' 라고 이야기 하고싶은 의도 뿐이기 때문에 예측 자체가 아무 소용이 없어. 왜냐하면, 누군가 내 생각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불쾌한 기분을 만들기 때문에 곧잘 자기 입장을 취소하고 오래전부터 그 반대편에 있었던 것 처럼 이야기 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지.

B 그래? 네 말대로 라면 예측 자체가 아무 소용 없다는 네 말자체도 소용이 없는 셈인 것이겠구나. 왜냐면 네가 상대방이 어떤 행동을 할지, 어떤 말을 할지를 미리 예언했다고 해도 그사람이 기존의 자기 생각과는 반대로 행동할 것이라는 것 조차도 또다른 예측일 뿐이잖아.

A 엇. 그렇.. 기도 하네. 이런- 망할! 생각이 짧았다.
가위바위보를 하기전에 나는 보재기를 낼거다 라고 미리 선언하는 그런 상황이 번뜩 떠오르네-

B 사실은 말야 내가 네게 '무슨 생각 하니?' 라고 물었을때 너같은 녀석은 내가 그 질문을 할것이라는 예측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측을 하고 있었어.

A 하하하. 요녀석 오늘따라 재기발랄하네?

B 라고 해도 무방한 상황이 되어버린거지 안그래?

A 응 그렇네 재밌군 재밌어.

B 내가 누군가의 행동을 예측하고 있다- 라는 생각은. 정말 매력적인 생각이니까 마치 내가 그를 조종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하는것이고. 결국 네가 말한 것 처럼, 가위바위보를 할때 우연히 이겨 놓고서는 자기가 마치 그 승리를 예견했다는 양 다시한번 꼭 집고 넘어가는 사람이 있어.

A 그.. 그래. 그런 것에 집착하는 사람이 꽤 있지.
결국.. 나도 그렇기도 한거였네?

B 크크 그건 뭐 누구나 그런거니까.

A 으악 제일 싫어!!

B 뭐 뭐가??

A '누구나 그런거니까-' 라는 일반화 말이야...

B흠. 그래? 누구나 그런거니까 라고 일반화 되는건 또한편으로 누구나 싫어하는 그런거니까... 하지만 또 우습지만- 정 반대로, 누군가가 제발 지금 내 생각과 마음을 제발 좀 예측해줬으면- 할때도 있는 거지, 겉으로는 일부러 티를 내지 않고 말이야.

A아아..넌..설마 진부하기 그지없는 그 '연애일반'에서 펼쳐지는 감정다툼을 이야기 하려는 것이냐? 그런 얘기라면 난 딱 질색.

B어어- 네가 연애를 안해봤나보구나? 생각해봐, 상대방이 날 예측할지도 모른다는 예측하에 내가 상대방에 대해서 어떤 예측을 하고있다는 예측을 하도록 해야하는 그런 상황따위를 말이지. 그런 생각을 머릿속에 단 한순간 품는 것 만으로도 왠지 인간 심리학사에 아주 중요한 획을 긋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 긴장감과 미묘함을!!

A헉. 미쳤구나.


너의 오퍼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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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오퍼시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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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요새는 한 30 정도. 그럼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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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난 그래도 아직 한 50 퍼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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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건강한 편이구나- 나의 레이어는 요즘 거의 존재감이 없어. 아 뭐가 맞는지 모르겠어.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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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 쉬긴... 내가 보기에 그건 순전히 너의 의지에 달린 문제 같은데. 네가 정말 오파시티 제로 퍼센트를 지향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적어도 카피 앤 페이스트를 해 본다 던가. 머지 다운 해 보려는 시도정도는 해볼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냐. 내가 보기엔 넌 너의 지금 레이어에서 컨트럴 씨 버튼을 누를 만큼의 의지도 없어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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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그래도- 그래도 난 콘트라스트 값이 낮아지는건 원치 않아서 언제고 컨트럴 엠 버튼을 누를 준비는 되어있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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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트라스트 값을 높이고 싶은건 누구나 그렇지. 하지만 우리에겐 언두 할수있는 히스토리 값이 제로라는건 너도 알잖아. 돌이킬 수 없어- 그렇기에 신중한 다른 많은 사람들은 함부로 그 값을 높이거나 하지 않는 거겠지. 매력적이지만 자칫하다간 언두 할 방법이 없어서 인비저블 레이어로 남겨지면 다행이지만 컨트럴 델리트 되기 쉽상인거고. 난 네가 지나치게 그 매력에만 빠져있는게 아닌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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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언젠간 나도 백그라운드 레이어 위로 완벽하게 오버레이 되야 할 때가 오겠지. 그때만약 형편 없이 낮은 오퍼시티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의 콘트라스트 값이라면 거의 모니터상의 불량 화소보다도 못한 신세가 되겠지. 하지만 난 정말 오토 레벨이나 오토 콘트라스트 따위로 규칙적으로 계산된 듯한 레이어로 남는건 질색이야... 정말 절대적인 알 쥐 비 값이 있는건지도 모르겠고 말야. 그건 씨 엠 와이 케이 모드이건 그레이 스케일 모드이건 마찬가지야... 로드 스와치 패널을 열어놓고 웹세이프 컬러가 마치 F1키 라도 되는양 믿으라고 외치고 다니는 사람들을 만나면 정말 구역질나. 차라리 그럴땐 컨트럴 아이 버튼으로 확 뒤집어 버리고 싶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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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휴- 나도 모르겠다 욘석아. 난 네가 어느순간 컨트럴 알트 델리트 라는 극단적인 키 조합을 선택할 까봐 겁난다니까. 요녀석 완전 다 큰 애가 알트탭 알트탭 방황하고 있군. 쯪쯪. 아무래도 넌 에프 원 키같은건 절대 안눌러 볼 녀석같다.

스냅 투 픽셀 옵션따위는 꺼둔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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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요즘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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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요즘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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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난 어떤 내가 알수 없는 어떤 키프레임에 근접 해 가고 있는 것 같아. 매프레임 마다 반복 되도록 정의 된 어떤 온 엔터 프레임 펑션으로서의 느낌도 아니고. 어떤 고정된 틀을 가진채 움직여야 하는 모션트위닝도 아닌. 낡은 방식의 쉐이프 트위닝 으로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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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음 그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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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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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라면. 단지 이즈값 -100 정도의 상쾌한 가속도가 느껴진다고 해서. 마치 너의 모든 무비가 완성될것처럼 생각해서는 안된다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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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말은 어떤 완벽한 디버깅을 말하는 거구나. 모두들 그렇게 충고하곤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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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 그렇긴 해. 만약 진정 네가 그런 타임라인을 살고자 한다면 좀 더 많은 의심을 해야겠지. 그 키프레임이 너 스스로 인서트 한 키프레임 이냐 아니면 너 아닌 누군가의 의지로 생성된 키프레임 인지도 잘 보아야 하고. 그것이 순전히 네가 원한 키프레임이라고 해도. 혹시 중간에 블랭크 키프레임은 없는지도 살펴봐야하고. 특히나 쉐이프 트위닝이라면. 에디트 쉐이프 힌트를 철저히 이용해서 진정 네가 원하는 모습이 그 마지막 키프레임에서 완성되는지 살펴봐야겠지. 그런 의심없이 섣부르게 컨트럴 엔터 버튼을 눌렀다가 갑자기 아웃풋 창에서 주르륵 끝없이 에러메세지가 나온다거나 아예 무비 자체를 꺼버려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잖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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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그래 좋은 얘기다. 이런 완벽주의자 같으니. 난 사실 이미 어쩌면 나도모르게 컨트럴 엔터키를 누른 걸지도 몰라... 내 생각엔 그건 무비마다 어떤 타임라인을 추구하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싶어. 예를들어 어떤 무비는 마치 스크립트 만으로도 뭐든 가능하다는 양 지나치게 많은 오브젝트의 규범과 윤리들을 펑션으로 정의해 놓고 퍼블리슁 하기도 하고. 어떤 무비는 타임라인에 있어서 어떤 분명한 몇개의 키프레임을 기준으로 시원시원하게 그 프레임을 향해 모션 트위닝을 걸어두기도 하는거고. 또 어떤 무비는 수없이 많은 키프레임과 쉐이프 트위닝 을 통해 일일히 하나씩 수정해 가기도 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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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너는 마지막의 경우인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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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나는 쉐이프트위닝 속에서 벌어지는 알수없이 미묘한 운명과 우연의 힘이 좋아. 어떨땐 생각지도 않은 모습과 이미지로 살고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하거든. 말하자면 나에겐 어떤 펑션도 영향을 주긴 힘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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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그런 삶은 말야. 뭐랄까...
스냅 투 픽셀 옵션따위는 꺼둔채로 오류의 풀숲을 헤치며, 네 삶을 통털어 일어날지 모르는 어떤 불길한 프로그램 에러를 과감하게 헤쳐나가는 헤더의 용감한 모습이 떠오르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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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역시 너란 레이어는! 친구야.. 왠지 이미 너도 나와 같이 그 불길한 오류의 첫번째 프레임을 끼워넣고 있는것 같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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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와 B의 짧고 강렬한 대화.

A
넌...

B
응?

A
아니다.

B
!


다섯개의 음절과 네개의 점. 그리고 물음표와 느낌표.
A는 어쩌면 단순히 넌... 이라고 운을 띄웠을 뿐이고
사실 딱히 할말이 없어서 싱겁운 후회를 하고있을지 모르나

B의 머릿속엔 아마도 무수히 많은 상념과 번뇌가 지금도
끊임없이 흐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보통 B가 A를 좋아하고 있다거나 A에게 B가 남모르게
저지른 잘못이 있다거나 할때 B의 의혹은 더 극심하다.

어이쿠.
덧없다.

A와 B의 0에 관한 대화

A
얼마나 되니, 아는사람이-
너를 안다고 하는 사람들 말야.

B
글쎄 메신저 아이디가 너뎃개쯤 되고 그중 두개의 아이디는
각각 100명쯤 등록되 있는것 같은데?

A
그렇구나 그러고보니 메신저 컨텍 리스트 라는게
인간관계의 양적 척도로서는 꽤나 리얼타임으로 적절하겠다.
그래 내가 하고싶은 얘기는 뭐냐면-
거시적으로 보자고. 혹은 우주적 관점에서-

B
뭐? 우주적 관점?

A
그래 여긴 어크로스더 유니버스니까 말이지;; 우주적 관점이라는게 인력으로
가능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생을 놓고 봤을때. 스스로 생각하기에 꽤나 중요한 순간들이 있잖아 '나'라고 하는 점과 '너'라고 하는 점이 거의 부딛칠 정도로 가까이 머무는 그. 순간말야. 음-

B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지는 거? 그게 왜 꼭 가장 중요한 순간인데?

A
그건, 뭐 내가 하려는 이야기에선 중요한게 아니니까 일단 바이건스-

B
읍 그래.(지 맘대로군)

A
고등학교때 보던 함수그래프들 있잖아 무한대에서 시작해서 끝없이 0 이라는 값에 다가가려는 듯한 그런 곡선, 그런걸 떠올려봐- 그 가까워지는 순간 말야, 어쩌면 스며든다는 표현이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 가늠할수 없는 순간에 끝없이 <반>작용하는 힘에 대한 설명을 하려는거야. 0 이라는 값에 가까워지지 않도록 하는 그 힘 말야.

너무 거창하게 얘기를 하고있는것 같아서 조금 걱정되지만- 끝까지 들어봐.
그 영원히 가까워지려는 힘의 정반대로부터 작용하는 그

영원히 0 을 지양하는 그 힘은.
되게 원초적인 어떤 힘과,
되게 싸구려-한 감상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라는거지.

원초적인 그 힘이라는건, 일종의 본능같은건데 말야 '우주미아'라고 들어봤니? 내가 종종 얘기했던것 같은데. 모른다고? 음- 무나넷시절에 주절주절 어딘가에 많이 적었던것 같은데 히히 말하자면- 우리는 태어날때부터 홀로이어야만 생을 버텨내거나 혹은 살아갈 수 있는 존재 이다' 라는거야- (이런 생각도 이미 좀 식상하지-만.)

그리고,'싸구려 감상' 이란게 뭔지 궁굼하지? 그건 설명하자면-

'자아의 개별성에 대한 향수나 동경' 이라고 하면 될까? 왜 싸구려 감상이라고 <치부>해버리고 있냐면 말이지. 결국 '난 정말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것 같아' 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 뿐인데, 스스로 생각하는 평범한 사람에 대한 가치평가라는것도 고작해야 메신저 리스트에 있는 (사실은 잘 알지도 못하는) 200명 남짓한 사람들을 통해서 얻은 감정적 통계치일 뿐인데다가. 그런 개별성에 대한 획득이란것도 어떤 진지한 자신만의 세계관과 아이덴티티의 구축이라기 보다는 그저 <뭔가 달라야한다>에만 집요하게 촛점이 맞춰진 것이라서, 그 200명 안에서만 슬쩍 살펴보더라도 '나'라는 존재가 평범한 '너'라는 존재안에서 조금 색깔과 width height값만 수정된 베.리.에.이.션
일 뿐이라는거지. 그래서 '싸구려 감상' 이라고 '치부' 하고있는 것이구.

그런 싸구려 감상과 우주미아적 본성이 너와 나의 거리가 0이 되어버리는 사태를 막기위해 필사적으로 자기 자신을 달래고, 설득해서 결국, 평행을 만들어 내거나. 상대방을 밀어내거나 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이야기야.

B
(주절거리긴-) 뭐 대략 이해는 할 수 있어. 네 말은 그러니까.. 음

A
으응 그래 이야기가 좀 주절주저리 되버린 감이 없지않아 있어. 결국 내가 하고싶었던 얘기는 우주미아적 본성은 어찌할수 없는 문제이거나, 애초에 그따위 본성은 없다고 치더라도 겨우 '싸구려-한 감상' 때문에 0을 이루어 낼 수 없다는건 또 좀 서글픈 일 같다는 이야기였어.

B
응 그래 그거. 서글픈 그런 감정 이해가 근데말야... 근데 왜-

A
그런데 왜 나에겐 관계에 있어서 지향점에 0 이어야만 하느냐고?
글쎄 그건 아직은 잘 모르겠어. 그리고- 아까 말했던 그 '자아의 개별성에 대한 향수나 동경'이 향수나 동경으로서만이 아니라 진짜 진짜 진지한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하려는 힘이라면- 그런 힘에 의한 평행과 멀어짐의 상태는 그저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고

B
말뚝뚝 끊긴-
그 싸구려 감상론에 대해 특히 주절거린걸 보니 약간 네 스스로에대한 변명을 나름대로 우회적으로 일반화 해버려 정당화 하려는 너의 음흉스런 심보가 엿보이긴 하다만- 그래 나이 들수록 더 그런 담담한 슬픔같은걸 많이 느끼게 되- 뭐라고했었지? 뭐? 무슨 향수? 싸구려 감상? 그런건 잘 모르겠다만- 다치지 않겠다고, 변변찮은 자존심같은것들 때문에 점점 사람 사귀기가 어려워지고, 이유도 모른체 멀어지는 일들이 생기는것 같아-

A
그래 그런데 정말 어쩌면. 거리=0 을 지키는게 맞는지도 몰라-
'너'와 '나'가 중첩되는 그 0이라는 지점이 어쩌면..어쩌면 어떤 완성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어떤 파멸일지도 모르겠어. 어떤걸까? 그...
degree=0 라는 지점은...

A의 변명

A: 그날은 아프다면서 왜 도서관에 갔나요? 좀 쉬지 그랬어요-

B: 응 사실 아프다는건 핑계였고. 그날 비도 꽤 많이 내리고 어두컴컴한 날씨여서 한없이 졸립기만 한 날씨였는데. 음 그 빗속을 뚫고 거기까지 도서관까지 갈만한 의욕은 없었던것 같애.

A: 그럼 어떤... 의무감때문이었나요?

B: 음 그럴지도 몰라. 난 사실 여기저기에서 사람들 만날때마다, 되게 진지한 말투로 난 이러이러한 사람이 될거고 그래서 이러이러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무심한척 얘기하고 다니거든... 그래서 때로는 그렇게 내뱉었던 말들을 의식하기도 하고, 그날도 누군가에게 도서관 갈거라고 말했던것 같애.

A: 그럼 단지 그사람들에게 내뱉은 말들때문에 간다는 말인가요? 이런말하긴 뭣하지만 좀 가식적인것 같아요. 꼭 누군가에게 잘보이려고 애쓰는것 같잖아요.

B: 하하. 응 알고있어. 난 내안에서 늘 요구하는것이 무엇인지 잘 알아. 그중에서도 가장 큰 목소리로 가장 높이 갈고리을 던지는 녀석이 허영심이란 놈이지. 변명처럼 들릴테지만, 난 단지 그 허영심을 좀 더 부추겨서 내가 다가가고자 했던 그곳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갈 수 있으면 족한거야. 말하자면 내안의 허영심을 인질삼아 나를 구출한다고 할까.

A: 미끼를 던지는 것이군요. 후훗.

B: 응. 이중자아의 변증적 발전이랄까.

A: 하하하.. 하- 하... 나도 형처럼 성의있게 변명할수 있으면 좋을텐데.

B: 좋긴... 후후. 대신 변명이 난해하면서도 정교하면, 뭔가를 일방적으로 탓하기 위한 생각에만 골몰하고 있던 사람들은. 그 황당한 변명의 논리자체를 이해하는데에 더 애를 쓰게되고 이해에 도달하는 순간엔 긴장이 풀리면서 처음의 호전적 태도는 좀 누그러들게 마련이지. 쿨럭. 억 미안.

A: 아 유 뭘 또 참 형도 오버해서 큰일이야.

B: 하하. 하- 하.. 미안-.

미필적 숙명 (未必的 宿命)

머리 위엔 거대한 궤도가 그어져 있으며 그 아래로는 하얀 심연이 아찔하게 펼쳐져있다. 눈앞엔 경계를 알수없는 지평이 이유도 허락도없이 나의 레일을 아득하게 집어삼키고있다. 원경에 가까와질수록 좁아진 레일은 나침반처럼 마치 어딘가를 지향하는듯 보이고, 어디로 가는지, 어디에서 끝나는지, 그 어디에 도착했다는 자들은 이미 지나가고 없지만. 그들이 적당히 그어놓은 하루와 이틀이라는 지표를 잡아당겨 그 어디로 가고 있는것이다. 겁쟁이 인류는 그와 비슷한 수없이 많은 눈금을 새겨놓았지만. 나는 잘 보지도 않는다. 단지 오늘이라는 패달위로 내일만큼의 무게를 더하여 조금이나마 나아가면 족할 뿐. 더 어릴적엔 쓸데없이 많은 내일을 더하여 속력을 내어 그 어딘가에 가까워진다 믿었지만, 내일은 또다시 오늘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을 깨닫고나서 부터는 따분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부터인가 가까와지는 한 줄기 다른 레일을 발견하게 되었고. 스무해 넘도록 이유도 모른채 궤도를 질러온 터라 지치고 외로웠던 나는 어느날 부터인가. 심연을 뚫고 다가오는 너의 레일을 기다리게 되었고. 너와 가까와 지는것이, 하루와 이틀이라는 지표보다 더 가치있고 내일의 무게를 재는것보다 중요하게 느껴졌다. 바꿀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레일을 두드리며 너에게 가까와지길 소원했고. 믿을수 없겠지만, 어쩌면 조금은 나의 레일은 나의 의지대로 조금은 움직인듯 했다. 자신감에 넘쳐올라 정해진 눈금조차 마음대로 바꾸어 놓을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언제인지 모를 시간에 나는 너와 이야기를 나눌수 있을만큼 가까와 진것을 깨달았고. 우리는 그간 힘겹게 밟던 오늘과 무겁게 올려놓던 내일조차 놓아버린채 적당히 상쾌한 속도를 공유했고, 영원할 듯 나란한 방향을 공감했다. 우리의 간극은 더없이 여유로왔으며 그 사이로 쾌적한 이유를 가진 바람이 불어왔고. 너와 나는 허무하게 펼쳐진 백색 심연 위로 마주앉아 발을 구르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날 아침, 불안한 표정으로 너는 레일을 잇는 고리를 점검하기 시작했고. 나는 애써 화난 표정을 감추고 널 맞이하려 했지만, 너는 다시 너의 패달을 점검한다. 그제야 나는 서로를 추락시킬만큼 위태로운 각도로 마주선 우리의 좁은 절벽을 발견하였고. 그 틈에선 어느새 하얀 결말처럼 이유없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세계의 레일은 서로 겹치는 일 없이 고안되었다는 오래된 낙서를 본적이 있지만. 충돌은 머지 않은 듯 했고. 나는 다시 레일의 방향을 바꾸려 육중한 그것을 탁탁 치기 시작했다.

하루 하루 다가오는 그 궤도의 속도와 방향 시간을 계산하며 불안에 떨었고 이어 다가올 심각한 충돌로 인해 끊어져버릴지도 모를 연결나사를 틀림 없이 조여나갔다. 한번도 벗어나본적 없는 이 궤도에서 빗겨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수 없는 일이었고. 하루이든 이틀이든 잡아당길만한 지표 조차 의미없이 튕겨져 나갈 것만 같았다. 충돌은 흔적도 없이 나를 떨어뜨릴 테고 추락은 위와 아래를 분간할수 없이 공포스러웠다. 그렇게 부산하게 각자의 일에 열중해 있는 동안 너와 나의 간극에선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고 충돌이 임박했을때 우린 감각을 잃었고 소리를 잃었고 빛을 잃었다.

그러나, 너의 비명도 나의 비명도, 세계을 찢어놓을 충돌도, 불길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시 빛을 찾았고, 소리를 찾았고, 감각을 찾았다. 너는 너의 궤도를 그으며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원했던, 내가 원치 않았던, 우리에게 임박했던 그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고. 다시 바꾸어보려 머리위에 레일을 두드려 보았지만 텅텅 무책임한 대답만 들려왔다. 다가가던 그 순간에도 멀어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너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레일은 그저 그렇게 처음부터 동그란 각자의 원을 긋고 있었던것 뿐인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나의 레일을 두드리며 또 다른 너를 기다린다.

The Vagabond Voyage

오늘도 그는,
나의 작은 시야에는 포착되지 않을만큼 거대한 몸을 깨우고 그 스스로도 자부하는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시스템을 운용하였다. 그가 운용하는 시스템 속의 나란 존재는 (혹은 점유율은) 수치로 표현되어질 만큼 의미있는 오브젝트가 아니며, 한번도 그 안에서 과부하나, 트레픽으로서 말썽을 일으킨 적도 없다. 그러므로 그는 나를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어쩌면 잠시동안 나는 0바이트 파일을 자청하여 잠자는 메모리로서 숨어지내어도 무관할지도 모른지만. 나는 늘 그를 의식하며 잘보이려고 애를 써왔다.

오늘도 나는,
내게 할당된 만큼의 일을 수행하였고,내가 가진 모든 자원을 소진하여 그를 돕고, 그가 흡족해하도록 소비되었다. 허나 그것도 부족하다고 여기는지 나는, 그가 내게 정의한 사명들이 나의 삶의 모토라도 되는 양 나를 다그치며, 좀 더 효율적인 자원으로 활용되지 못해 함을 못내 안타까워 하였다. 어두워지고 그가 작용하지 않는 세상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자, 그제야 비로소 나는 버려졌으며, 지하철에 담겨져 집으로 버려지는 동안 낮동안 잘게 등분된 나를 주섬주섬 쓸어모아 둔해진 육신과, 탁해진 마음을, 탁탁 치며 다시 봉합하는데에 몰두하였다.

집에 돌아와서는 몸뚱아리를 더듬거리며 아직 살아있구나 라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자정이 되자 잠시 잊고있던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그는 이렇게 묻는다. '네가 살아있는게 대체 어떤 의미인가?' (그것은 일종의 테스트인것 같았다.)

그것은..
그것은..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럴듯한 대답을 하지 못하였고. 여느때와 같이 그럴줄 알았다는 듯 그의 목소리 또한 잦아들었다. 하지만, 대답하지 못했다 해서 내려지는 형벌따위는 없으니 신경쓸 이유 있겠는가?

자정이 지나면, 내게 또한가지 해야할 일이 생기는데 그것은 바로 곰곰히 오늘을 돌아보는 일이다. 되도록 흥미진진한 이야기어야만 한다.

오늘은..
오늘은..

하루를 떠올려보기에는 충분할 만큼의 시간이 지나자. 내 안 깊숙한 곳에 닫혀있던 문이 무겁게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저 아래 뜨거운 감수속에서, 고픈 배를 웅켜쥔 감정의 촉수가 사납게 기어오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있지만 오늘도 적당한 먹이감을 준비하지 못한 나는, 아직도 무엇을 내어주어야 할지 난감해 하고있다. 낮동안의 '그'가 원하는 것이라면 곧잘 해내는 나이지만, 정작 내가 원하는 것에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하고 만 것이다.

조금있으면, 안으로부터 기어나온 그것들이 나를 삼킬테지만. 몸뚱아리라도 내어주어 위로해주지 않으면 어쩌겠는가.

오늘은..
오늘은..

이상하게도 아무 기억이 없다.
그다지 힘든일도, 그다지 슬픈일도, 그다지 기쁜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