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그는,
나의 작은 시야에는 포착되지 않을만큼 거대한 몸을 깨우고 그 스스로도 자부하는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시스템을 운용하였다. 그가 운용하는 시스템 속의 나란 존재는 (혹은 점유율은) 수치로 표현되어질 만큼 의미있는 오브젝트가 아니며, 한번도 그 안에서 과부하나, 트레픽으로서 말썽을 일으킨 적도 없다. 그러므로 그는 나를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어쩌면 잠시동안 나는 0바이트 파일을 자청하여 잠자는 메모리로서 숨어지내어도 무관할지도 모른지만. 나는 늘 그를 의식하며 잘보이려고 애를 써왔다.
오늘도 나는,
내게 할당된 만큼의 일을 수행하였고,내가 가진 모든 자원을 소진하여 그를 돕고, 그가 흡족해하도록 소비되었다. 허나 그것도 부족하다고 여기는지 나는, 그가 내게 정의한 사명들이 나의 삶의 모토라도 되는 양 나를 다그치며, 좀 더 효율적인 자원으로 활용되지 못해 함을 못내 안타까워 하였다. 어두워지고 그가 작용하지 않는 세상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자, 그제야 비로소 나는 버려졌으며, 지하철에 담겨져 집으로 버려지는 동안 낮동안 잘게 등분된 나를 주섬주섬 쓸어모아 둔해진 육신과, 탁해진 마음을, 탁탁 치며 다시 봉합하는데에 몰두하였다.
집에 돌아와서는 몸뚱아리를 더듬거리며 아직 살아있구나 라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자정이 되자 잠시 잊고있던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그는 이렇게 묻는다. '네가 살아있는게 대체 어떤 의미인가?' (그것은 일종의 테스트인것 같았다.)
그것은..
그것은..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럴듯한 대답을 하지 못하였고. 여느때와 같이 그럴줄 알았다는 듯 그의 목소리 또한 잦아들었다. 하지만, 대답하지 못했다 해서 내려지는 형벌따위는 없으니 신경쓸 이유 있겠는가?
자정이 지나면, 내게 또한가지 해야할 일이 생기는데 그것은 바로 곰곰히 오늘을 돌아보는 일이다. 되도록 흥미진진한 이야기어야만 한다.
오늘은..
오늘은..
하루를 떠올려보기에는 충분할 만큼의 시간이 지나자. 내 안 깊숙한 곳에 닫혀있던 문이 무겁게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저 아래 뜨거운 감수속에서, 고픈 배를 웅켜쥔 감정의 촉수가 사납게 기어오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있지만 오늘도 적당한 먹이감을 준비하지 못한 나는, 아직도 무엇을 내어주어야 할지 난감해 하고있다. 낮동안의 '그'가 원하는 것이라면 곧잘 해내는 나이지만, 정작 내가 원하는 것에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하고 만 것이다.
조금있으면, 안으로부터 기어나온 그것들이 나를 삼킬테지만. 몸뚱아리라도 내어주어 위로해주지 않으면 어쩌겠는가.
오늘은..
오늘은..
이상하게도 아무 기억이 없다.
그다지 힘든일도, 그다지 슬픈일도, 그다지 기쁜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