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는 겁니까?
뭘. 말입니까?
어떻게 하는 거냐구요. 그 요술 말입니다.
요술이요? 난 요술같은거 부릴줄 모르는데.
당신 그 생 자체가 내겐 요술입니다.
지금. 시비거는거요? 내 생이 어떤지 당신이 어떻게 알아?
모르신다면 설명 해 드리죠.
첫째, 당신은 어제 출근했습니다.
둘째, 당신은 오늘도 출근했습니다.
셋째, 당신은 내일도 역시 똑같이 그렇게 할 것입니다.
넷째, 아마도 당신은 앞으로도 한결 같은 사람일 것입니다. 맞습니까?
그런데.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거요?
모르시겠다면 다시 설명 해 드리죠.
첫째, 당신은 어제 어떤 연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런 감정 정말 다시 없을줄 알았는데.. 어쩌지?"
둘째, 당신은 오늘 어떤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제 한번 밥이나 한번 먹어야지 으응?"
셋재, 당신은 내일 어떤 부모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밥 먹었어요, 먼저 주무세요, 내일 일찍 나가야되요"
넷째, 당신은 앞으로의 당신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아니야, 이게 맞아, 다들 그렇게 사는거지"
라고.
뭐요? 당신 뭐야? 누가 당신보고 내 생에 대해서 마음대로
개. 지껄여 달라고 했어? 당신 미쳤구만?
난 당신 등 뒤에 난 구멍으로 당신의 모든 것을 지켜볼 수 있었거든요.
뭐요? 구머-엉? 당신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고,
구멍이고 뭐고 마음대로 갖다 붙이나 본데, 어디한번 마음대로 해보슈.
그래 지켜본 내 생이 어떻다는거요?
당신은,
생을 가로질러 나아가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언제나 똑같은 고도계 속에서
또다른 당신 자신을 마주치며 느끼는 환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악몽조차 진부하게 받아들일 만큼 주기와 궤도에 대해서도 알고 있습니다.
당신 주변의 관계라는 것은 그저, 말코비치씨와 또다른 말코비치씨가
말코비치 말코비치 라고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 또한 이미 알고 있습니다.
절대로 당신 내부에서 당신 스스로를 가만히 두지 않는 또 다른 당신 자신과의
반목, 배신, 그리고 불신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의미가 없음 조차 의미가 없다는 것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 것을 원하는 것, 모든 것이 허용 된다는 것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을.
그 모든 것 들을.
그 모든 것 들을 알고 있으면서, 처음에 내가 당신에게 이야기 했던 것 처럼
당신은 계속해서 첫째, 둘째, 셋째, 넷째를 하고 다시 첫째, 둘째, 셋째, 넷째를 하고 있습니다. 그 것이 당신이 내게 가르쳐 주어야 할 요술입니다.
요술?
요술.
좋소. 알겠소. 무슨말인지.
난 그 요술에 대해서 모르오.
그리고 난 그 요술에 대해서 알고 있소.
하지만 당신은 그 요술을 결코 알아 낼 수 없을 것이오.
왜?
왜. 왜냐하면
그 요술에 대해서 묻는 사람은,
그것을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이오.
그것에 대해서 한 번도 묻지 않는 사람.
그 사람 만이 그 대답을 알고 있소.
난 그것에 대해서 한번도 나 자신에게 물어본 적 없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