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벤즈아크리딘, 디메칠니트로사민 그리고 카본모노사이드

검지와 중지 사이에 깊숙히,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는 꼴이 되도록 담배를 피워무는것은 별로야. 검지손가락과 엄지손가락 끝으로 얌채같이 겨우 끼워들고 바짝 한모금 빨아들이며 인상을 찌푸리는 것도 별로이고.

그러면?

잘 봐. 이렇게. 담배 한모금을- 폐부까지 깊숙히 빨아들이지 않고, 일단 입에 한가득 담아두는거야. 그 다음, 이렇게- 연기의 일부분을 마치 내 영혼을 금방 사자들에게 내 주기라도 할 것 처럼 대기중에 부유 하도록 놓아두는거야. 아무것에도 의욕을 느끼지 못하는 그런 표정으로. 그러면 그 연기들은 조금은 수줍은듯 대기중에서 머뭇거리거든. 너는 잠시동안 그 영적인 황홀경을 관망할 수 있는 순간을 갖게 되는것이지. 영혼을 내 준 댓가로 말이지. 화양연화라는 영화 속에서 양조위의 머리 위를 떠돌던 그 담배연기도 마찬가지인 셈이지. 어떤 사기꾼은 그걸 보고 '영혼의 신음소리' 라고도 표현했더군. 아- 그런 영화를 상영할 때에는 흡연자들을 위한 객석을 특별히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명심해 그 영원과 같은 순간은 단 1분도 되지 않아. 다시 숨을 들이쉬어야 할테니까. 그 때에는 약간 씁쓸한 표정을 지어도 괜찮아. 왜냐하면, 네가 인지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너는 항상 생을 원하고 그것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게될테니까. 그 짧은 순간 너는 어쩌면 처음으로 너의 머리가 아닌 기관이 주관하는 너의 생을 깨닫게 될지도 몰라. 하지만 눈을 질끈 감아버리지는 마. 네가 숨을 들이쉬는 순간에도 네가 뱉어낸 그 아름다운 조화를 조금은 더 지켜볼 수 있을테니까.

이렇게?

아. 아. 너라는 녀석은 진지하지 못하구나. 그렇게 막무가내로 들이마셔버리다니. 넌 지금 네 눈앞에서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거야. 심미안적 접근이 아니라면, 화학적 분석을 시도해보는거야. 담배연기에는 네가 상상할 수조차 없는 매력적인 이름을 가진 화학성분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거든. 예를들어 디벤즈아크리딘, 디메칠니트로사민, 카본모노사이드같은 이름들은 그저 발음해 보는것 만으로도 마치 중세의 마법을 외는 듯한 묘한 매력이 있지. 또, 각각 성분들의 원래의 목적과 쓰임에 대해 알아보면 하드코어적인 쾌감을 느낄 수 있기도 해. 예를들어 최루탄의 성분인 포름알데히드, 로켓의 연료로 쓰이는 메탄올, 좀약의 성분이기도 한 나프타린, 흰개미의 독과 같은 아세닉, 심지어 사형가스실에서 사용되는 청산가리따위도 포함되어 있거든. 그 외에도 4000여가지의 성분이 900도의 담뱃불 끝에서, 열분해, 열합성, 증류, 승화, 수소화, 산화, 탈수화 등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 기체상태의 담배연기로 변하게 되는 것이지. 만약 에이젠슈타인같은 감독이 이 장면을 편집했다면, 2차세계대전의 폭격장면이나 화학테러 쇼트를 중간에 끼워넣었을지도 모를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