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자에 대한 연민

"요즘 어떠니?"

"게을러요."

"허허. 여전하구나."

"네 정확히 보셨어요. 형을 만나고 나니, 그게 '여전한' 것이었다는 것을 새삼 또 깨닫게되네요. 게으른데다가 여전하기까지하다니 제길-"

"왜 게으르다고 생각하는데? 지난번에도 그렇게 말했던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 넌 계속 뭔가를 부지런히 찾고 있는 것 같거든. 하긴- 정말 네가 게으르다면, 날 만날 때마다 게으르고싶지 않다는 얘기만을 했을테고, 그래서 내가 너를 게으르지 않은 녀석으로 기억하고 있는것일 수도 있겠다. 게으른 자아에 대한 성찰에 부지런한 녀석. 이라고 하면 좀 위로가 될까."

"위로가 되네요, 그럼 저는 앞으로 게으름을 추구해 볼까요. 혹시 모르잖아요, 나중에 나태론 이라던가, 게으름의 역사 라는 제목의 책을 써서 유명해질런지. 사실 며칠전에 친구를 만났는데, 친구가 세번이나 '너는 게으르다' 라고 정의 해 줬었거든요."

"그 얘기를 듣고 혹시 기분이 나빴니? 그렇지 않았다면 넌 정말 좋은친구를 뒀구나. 그럼 이 다음에는 게으른데다가 그 것이 여전하기까지 하다 라는 부연을 추가해야 겠구나."

"게으름이란 뭘까요? 아- 그건 그렇고, 이런 질문을 누군가에게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짜릿한걸요? 어쩌면 이렇게 다시 질문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소크라테스 선생님 게으름이란 무엇입니까?'"

"난 싫다. 소크라테스는 대머리에다가 못생겼었다잖니. 난 그렇게 극적으로 죽고 싶지도 않아. 내가 소크라테스라면 너에게 다시 이렇게 묻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성실함은 무엇입니까?' 라고. '게으르다'와 '성실하다' 라는 말 속에 이미 '좋다', '나쁘다' 가치판단이 분명히 매겨져 있으니까. 일단 그 것에 대한 판단부터 이야기하자는식으로 말이지. 아니 그런데 넌 이런얘기를 하려고 만나자고 한거였냐. 난 그래도 소크라테스 보다는 바쁜 사람이다."

"재미 없으세요? 하긴, 얼마전에 플라톤의 '국가론'을 읽으면서 '와 정말 이 사람들 밤새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 할 작정인가?' 하면서 중간에 책을 덮었던 기억이 나네요. 사실은 여기 오기 전에 버스 안에서 생각하던게 있었어요. 내가 누군가에 '나는 게으른 사람이다' 라고 말하는 것과 '나는 게으른 사람이 되고싶다' 라고 말 하는 것이 어떻게 다른가 하고 말이에요. 조금전에 형이 말한 것처럼 그 것이 이미 가지고 있는 '좋다'와 '나쁘다'라는 선천적, 선험적 가치에서 탈출하기 위해 저는 그런 방법을 쓰는 것이죠. 긍정적인 것을 지양하고, 부정적인 것을 지향하는척 하기. 예를들어 지난번에 제가 한번 말씀드렸던 '슬픔의 추구' 도 같은 목적인거죠."

"응 기억나는 것도 같다만, 그래 슬픔을 추구하고도 살아지더냐?"

"모르겠어요. 분명한 것은 점점 더 모호해져만 가고, 모호해지는 덕분에 사소한 감정들에도 의심하게되고- 불구자가 된 느낌이랄까. 어떨 때에는 '일반'을 초월한 것 같아서 우쭐하다가도, 어떨 때에는 '일반'에서 소외된 것 같아서 우울하기도 하고 그래요. 그렇다고 제가 그런 고민끝에 슬픔추구권을 위한 그럴싸한 선언문 따위를 작성하는 것도 아니고, 결국엔 누워서 발가락이나 까딱거리며 '나는 왜 사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게되는거죠. 그러다보면 결국 그 꼴에 대한 총체적인 결론으로써 '아- 난 게으른거군.'이라고 되네이며 탄식하게되는 것이죠. 헌데 그 결론을 항상 한심하게만 바라보기 싫더라구요. 그게 더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아! 난 게으른 사람이었어!' 라고 외치면서도 환희같은 것을 느낄 수는 없는걸까- 하고 생각하기 시작한거죠. '드디어 난 게으른사람이 되었어!' 라고 신나게 춤추는 사람이 있다면-"

"미친거지."

"네. 미친거죠. 그럼 또 '아! 드디어 미쳤구나' 하면서 만족하는거죠. 하여튼 그래서 그 '게으름을 처음으로 <획득>한 자'는 게으름에 대한 가치의 전복을 꿈꾸게되는거죠. 세계평화를 위해서 그는 게으름의 신앙을 창시하는거죠."

"그건 또 무슨소리냐."

"모든 사람이 게으름을 추구하는 그런 세상인거에요. 게으름이라는 가치가 절대적인 신앙이, 사상이 되어버린 사회이기 때문에, 아니 어쩌면 절대적 가치라는 것이 없는 시대인지도 몰라요, 모든 면에 있어서 게으르니까요. 게으름의 추구가 곧 구원의 길인 그런 세상이죠. 일하지 않고서도, 돈을 모으지 않고서도, 소비하지 않고서도 만족하며 즐겁게 사는 사람들이 가장 추앙받는 세상. 심지어 국가들은 자원확보를 위한 의욕조차 갖지 않게되어버린 시대- 그리고-"

"미안, 나 잠깐. 화장실 좀 갔다올께."

"네."

**

"그래서? 동굴에서 불을 지피고 생활하던 수렵생활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야기였던가? 아닌가? 요즘 네가 불가에 입문했다고 이야기 하던중이었니?"

"에이- 아무 이야기도 아니었어요."

"아니야, 뭐 재미가 없진 않은 이야기였는데- 조금 전까지 세계평화를 외치던 놈이 그렇게 금새 의기소침해지면 쓰나. 화장실에서 생각을 해보니, 네가 말하는 '게으름의 추구'를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분발하여 부지런해져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더구나. 게다가 게으른 넌 지금 '너 자신이 게으르다'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 먼 곳까지 기어나왔잖니. 게을러지기 위해서 좀 더 분발해야겠는걸."

"많이 부족하죠."

"하나 물어보자. 네가 아까부터 나를 만나서 '게으름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만 했던 이유는 뭐겠니?"

"글쎄요, 모르겠어요 대답해주세요."

"녀석- 생각도 안 해보고- 게으르긴. 넌 아까 버스 안에서조차 그 생각을 했다고 했잖니. 너는 그저 싱겁게 '게을러요' 라고 말하는 건 싫었던거 아니겠니. 그 말을 하기 위해서 너는 결국 '세계평화를 위해서 게으름을 추구한다' 라는 별로 재밌지는 않지만 엉뚱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게 된거지. 나는 네가 나를 위해 그런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 내가 알기로 너는 그럴 만큼 이타적인 사람은 아니니까."

"이기적이죠."

"응. 그래서 너는 너 자신을 위해서 무엇이든 표현해야 만족하는 사람인데, 그 표현이 그저그런 진부한 것이 되도록 놔두지도 못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지. 진부한 표현이 되지 않기 위해 너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겠니? 네가 만약 게으름에 관한 그림을 그려야 했다면, 그 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형식과 모티브를 찾으려고 했을 것이고, 그 것에 관한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면 그 것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플롯의 시나리오와 가장 적합한 촬영기법을, 필름의 종류와 조명따위를 생각해야 했겠지. 어쩌면 너는 오늘 집에가서 게으름에 관한 글을 쓰느라 몇시간이고 타이핑을 해야할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러니까 내 말은..."

"부지런하다."

"그렇지. 너는 부지런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지. 어쩌면 항상 부지런해야 한다고 느낄테니 항상 게으르다고 느낄지도 모르고."

"음 부지런하다고 칭찬을 들은 것인지, 게으르다고 핀잔을 들은건지 도무지 모르겠군요."

"뭐. 결국 게으르다는 이야기였어."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