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역에서의 조우.

오늘 아침 출근 길에 매끈한 종이 비행기를 손에 든 검은 정장의 사내를 보았다. 조금 의아한 풍경일 뿐 그렇게까지 인상깊게 여길 필요는 없었는데 나는 아직까지도 그 날렵한 비행기의 동체와 날개에 새겨진 빨간 격자무늬 같은것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일년에 한번 혹은 이년에 한번 쯤, 꼭 그 고무동력 종이 비행기를 만들 곤 했었는데. 하루종일 내내 궁굼했던건 꼬리날개 부분에 선명하게 빨간 색으로 새겨져있던 제조사의 이름이었다. 다행히- 방금전에 그것이 cosmo 였다는 것을 기억해 냈고 그 업체가 아직도 종이 비행기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어 적지않이 놀랐다. 마치 너의 유년은 언제라도 증명할 준비가 되어있으니 아직은 걱정말라는 듯-

뭔가 뚝딱뚝딱 만들고 그리고 색칠하는 데 만큼은 자신있다고 여겼었지만 어릴적 내가 만든 종이 비행기는 유난히도 잘 날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늘 비행기 조립 시간이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COSMO 홈페이지에서 가만히 그 심플한 비행기를 보고있자니 얇은 나무 살을 휘어서 정교하게 고정시키고 나무가 뒤틀리지 않게 살짝 풀을 발라 종이를 팽팽하게 접착시키는 그 공정들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고 동시에 그것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내 작은 손과. 소음. 가위, 풀, 책상,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믿을수 없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날개에 풀칠을 너무 많이하면 무거워서 날지 못해- 라고 말하던 짝꿍의 목소리와 그 억양까지도 떠올릴 수 있다는 듯.

동시에 초등학교 시절에 만들었던 여러가지 것들이 생각나기 시작했는데, 일주일에 한번쯤은 문구점에서 사야 했던 노란 찰흙이나, 더 어릴적 집을 만들고 총을 만들곤 했던 파스텔톤의 수수깡. 수수깡! 그런것들이 그렇게 갑자기 그렇게 무책임하게 자꾸만 떠올랐다. 처음 비닐을 벗겨냈을때의 찰흙의 차가운 감촉이라던가. 약간의 끈끈함. 혹은 믿을수 없을 만큼 가벼웠던 수수깡의 무게감과 컷터칼로 잘라낼때의 찌릿한 소리. 그런 것들이 갑자기 못견디게- 그리워진 것이다. 그런것들은 언제부터 그렇게 새하얗게 묻힌 것일까?

그렇게 유년의 기억을 더듬거나 그것에 짙은 향수를 느낀다거나 할때, 언제인가부터 나는 그것을 어떤 신호로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오늘 아침 종이비행기를 손에 들고 있던 그 검은 정장의 사내는 내게 그런 메세지를 전하기 위해 그자리에 있었던 것이고, 그래서 난 지금 그 신호를 받고서 대처 방안을 모색 중인 것이다.

Lost Highway 2004

어디요?

화곡 역 이요.

다른 어떤 불필요한 친절이나 주저함 없이. 그 택시기사는 목적지만을 묻고서 바로 악셀을 밟고 질주를 시작했다. 도심에서 빠져 나오기 전 몇 분간은 택시기사가 살고 있는 그 택시의 내장을 살펴볼 여유가 있었는데. 나는 의례 택시를 타면 그렇게 운전할 때 핸들은 어느 손으로 제어하는지, 어느 정도 알.피.엠 에서 기어를 변속하는지, 택시기사면허증의 젊었을 적 사진은 어떤지 슬쩍 지금의 모습과 어떻게 다른지 따위를 관찰하곤 했었다.

차 안은 한 때 유행했던 형광 빛 발광물질로 온통 경박하게 튜닝되어 있었지만. 카 오디오에는 관심이 없었는지 거의 처음 출고 당시 그대로의 오디오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서 요란스러운 그 형광 빛 튜닝과 대조되어 전체적으로 초라하고 촌스러운 느낌 이었다. 꼬마전구 비슷한 그 발광체는 불안스럽게 철사로 여기저기 고정되어 있었는데. 새벽 네시에 색안경까지 끼우고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터프하게 핸들을 꺾고 있는 저 손으로 그 디테일한 작업을 하고 있다고 상상하니 괜히 좀 우스꽝스럽다 못해 애틋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렇게 여유롭게 차 안을 들여다보며 운전기사의 촌스럽고 소심한 취향에 땅땅땅 평점을 메기고 나서 보니 어느 새 택시는 심하게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채 올림픽 대로로 진입하고 있었다. 이내 방향 지시등도 켜지 않고 거칠게 고속도로로 합류한 그는 그때부터는 마치 그런 나의 평가 따위는 우습지도 않다는 듯 일 순간 나를 어떤 절대공포로 몰아넣고 있었다.

순식간에 150에 육박하고 있는 게이지를 바라보며 나는 한껏 몸을 낮추고 내가 타고 있는 이 미친 택시기사의 핸들링에 온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는 마치 자신의 남성다움으로 나를 한껏 눌러주겠다는 양, 내 몸이 왼쪽 오른쪽으로 기우뚱 거리는 것에는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짐짓 노래까지 흥얼거리고 있었는데 나는 한 순간 저 인간이 부지불식간에 내 생명의 한쪽 끝을 꾸욱- 움켜지고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사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여간 불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분 전에 내가 애틋한 마음으로 비꼬던 그의 남성성이 이제는 그의 남성다움을 증명하기 위한 제물로 내 생명을 내주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어쨌거나 이미 속도 게이지는 백오십을 넘어버렸고 더 이상 상황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상징하듯 부들거리며 계속해서 제가 세운 기록을 경신하며 떨어질 줄을 몰랐다. '아저씨 천천히 가셔도 되는데요-' 라는 말로 그를 회유하려던 생각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자신의 터프한 드라이빙에 몰입한 그의 흥을 깨버리거나 하는 일 따위는 오히려 그를 모종의 승리감으로 승화시켜 더 흥분하게 만드는 일 같았고 어쩌면 나는 그에게 그딴 식으로 쉽게 지고 싶지는 않았는지도 모른다.

좋은 방법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떻게든 시위하고자 하는 마음에, 그리고 그에게 이런 식의 무모한 레이싱이 나의 경우엔 전혀 소용없는 일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고자 나는 용기를 내어 너무 따분하다는 양 몸을 축 늘어뜨리고 고개를 젖혀 자는 척 해보려 하였다. 한 30초 가까이 그렇게 눈을 감고 있었을까. 갑자기 덤프트럭에서나 나올법한 빼-엑 거리는 경적소리에 정신을 번쩍 차리고서 보니 무슨 현실 계에는 존재하지 않을 법한 덩치의 트럭이 제 키의 두 배 쯤 되는 짐짝들을 싣고 아슬아슬 하게 내 옆을 비껴가고 있었다. 어이쿠 말하자면 현실 계에서 영혼 계로 들어서는 터프한 길목을 방금 지나친 것이었다.

그 덤프트럭의 울부짖음이 어찌나 끔찍하게 느껴지던지 잠시 공포를 덜어볼 요량으로 이어폰을 귀에 꽂고서 플레이 리스트를 뒤적거릴 것도 없이 어떤 음악이든지 들어보려 하였다. 전주가 흘러나오는 순간 제니스 조플린의 써머타임 라이브 트랙 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이 세상 모든 슬픔과 이세상 모든 고통을 한데 모아놓고 그 둘을 끊임없이 마찰하고 분쇄시켜야만 하는 운명을 지닌 어떤 끔찍한 기구가 내는 소음 같았다.

어젯밤에 한참 라이브동영상에 감탄했던 터라 다시 그 아련한 분위기 속에 몰입하고 싶었지만 도대체 일분 일초도 음악에 집중할 수 없었다. 나는 언젠가 내가 삶을 마감할 때 BGM으로는 무엇이 적당할 지를 생각해본 적이 있었지만 적어도 제니스 조플린은 아니었다. 어쩌면 몇 분 뒤에 한강 둔치에 끔찍한 시체로 나가 떨어져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 때에도 만약 내 귓가에서 제니스 조플린의 서머타임이 흐르고 있다면 얼마나 괴기스럽겠는가.

신경질적으로 이어폰을 다시 구겨 넣고 나서부터 나는 약간 정신이 혼미해진 채 나를 지배하고 있는 그 공포를 직시하며 그 때문에 생기는 두려움에도 솔직해지고 있었다. 전에도 종종 택시를 타면 교통사고의 순간을 상상해 보곤 했었는데 나름대로 사고 뒤의 죽은 내 시체에 대한 어떤 미적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예를 들자면 죽었을 때 어딘가 신체 일부가 찢겨져서는 안 된다 라던가. 우스꽝스러운 포즈로 굳어버리면 안 된다 라던가 표정은 어떻게 해야만 뭔가 품위가 느껴질 것이라던가 하는 그런 식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되도록이면 다리를 곱게 모아 흐트러짐이 없도록 긴장해야만 했다. 뭐 때로는 강변북로를 타게 되면 강변북로 특성상 도로를 탈주하여 한강으로 빠지는 것 또한 상상해 볼 수 있는데 물에 빠져 죽는 것 만큼은 절대 가정하고 싶지 않아서 그 경우에만 온갖 탈출 방법만 있을 뿐 죽은 뒤의 모습은 없다.

그렇게 한 15분 동안 마치 내가 핸들을 잡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닥쳐올지 모르는 사고를 대비하기 위해 잔뜩 집중하여 운전기사의 행동을 관찰하고 예측하고 있었는데, 그 때 까지, 그러니까 서강대교를 지날 때까지 내게 유일한 구원 되 주었던 것은 드문드문 도로 위에 서있는 속도위반 탐지기 뿐이었다. 택시 기사는 대체로 여유만만한 자세로 마치 자신의 택시가 서울을 남과 북으로 찢어놓고 있다는 광적인 환상에 도취 된 듯 한껏 고양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가 여유롭다는 것이 한편으로 내게 위로가 되기도 하였지만. 그 순간에도 나는 어떤 한가지 불길한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BMW G4 기종 이라던지 AUDI TT 따위가 우리의 택시기사를 비웃듯 차선을 넘나들며 정면으로 유유히 사라지는 일 이었는데. 그런 경우 안하무인 격으로 제 차를 앞질러간 차를 추월하기 위해 순식간에 레이싱을 펼치는 택시를 몇 번 경험해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속도로를 달린지 20분쯤 지나도록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새벽 5시를 향해갈 수록 고속도로는 한산해졌고 어쩌면 마치 올림픽도로가 나와 우리의 택시기사를 위해 마련된 어떤 잘 정돈된 궤도인것 같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여의도 를 지날 때 즈음엔 거의 미소를 지을 수 있을 만큼 평화로운 기분이었는데 여유롭게 구부러진 도로 위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떠내려가는 노란 나트륨 불빛에서 어떤 템포를 느껴서인지 아니면 마치 로스트 하이웨이 영화속에서 처럼 헤드라잇 아래로 스치는 차선의 움직임이 몽환적인 매력이 있어서 인지는 알 수 없었다.

지금 생각엔 아마도 택시 한편에 붙어있는 택시운전기사 자격증에 붙어있는 사륙사이즈 증명사진에서 어떤 위안을 얻은 것 같다. 그 사진 속의 남자는 삼십대 초반이 가질 법한 사회적인 안정에 대한 부담감을 몸소 표정으로 대변하고자 하는 듯 잔뜩 긴장한 듯한 눈빛으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는 에메랄드 빛이 살짝 도는 와이셔츠 위에는 얇은 스웨터를 걸치고 있었는데 마치 그 시대 아버지들이라면 한번쯤 소화해 내야 만 하는 촌스러운 컬러의 무늬가 느슨하게 도안된 스웨터였다. 그 넉넉한 사진속에서 적어도 이 아저씨, 아니 이 아버지라는 상징은 나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 라는 어떤 안도감을 얻었던 것이다.

목적지인 화곡 역을 가기 위해 강서구청 쪽으로 들어서자 택시 안에 설치된 형광튜닝 보다도 몇 배는 더 천박한 네온이 번쩍 거리며 우리 곁을 지나쳤다. 살짝 긴장이 풀리고 술기운이 올라 졸음이 몰려왔지만. 뭔가 자꾸만 우울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가 핸들을 쥐고 있었다면 강서구청 사거리에서 차를 돌려 다시 그 정돈된 하이웨이를 내달리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어제도 오늘도 혹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작은 걱정과 망상 때문에 쓸데없이 죽음 운운하며 두려워 떨고 있는 그런 내 모습들이 측은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매 순간 걱정하고 있는 사건들은 언제나 일어나거나, 혹은 일어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이다. 멈춰서는 안 되는 고속도로 위에 버려진 이상, 결국은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을 그 최악의 상황들을 애써 염려하며 쭈뼛 거리는 것 보다는 터프하게 꾸-악 악셀레이터를 밟는 편이 더 멋지지 않겠는가. 노란 가로등 불빛이 떠내려가는 템포에 맞춰서 서머타임 이라도 흥얼거리면서 말이다. 결국 결론은 진부하게도 용감하게 살자 따위가 되어버렸지만. 기분은 한결 나아진 것 같았다. 그런 깨달음이 고속도로 위에서가 아니라 한적한 2차선 도로에서 떠올랐다는 것이 좀 의심스럽긴 하지만- 훗.

잠시 동안 영문도 모른 체 살인자의 혐의를 뒤집어 썼던 그 무고한 택시기사는 2만원 가량의 포상금을 받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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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time / in album Live at Amsterdam '69

Summertime,
Child, you're living's easy.
Fish are, fish are jumping out
And the cotton, Lord, cotton's high, Lord, so high.

Your daddy's rich
And your ma, honey I think she's a mighty good-looking babe.
I think she's looking pretty fine to me now.
Hush, baby, baby, baby, baby, baby, baby, baby,
No, no, no, no, no, don't you cry.
Don't you cry!!!

One of these mornings
Child, you'll rise up singing baby,
An' since you gotta go, honey, spread your wings,
You can take, take to the sky,
Lord, the sky.

Until that morning,
Honey, n-n-no, nothing's gonna harm you babe.
I said, honey, no one's ever gonna let you down,
They wouldn't do it.
Hush, baby, baby, baby, baby, baby,
No, no, no, no, no, don't you cry.

웨더 리포오트.

오늘처럼 이렇게 유난스러운 날씨에는 특히 오랫동안 공감할 거리가 없어 서먹해진 관계에 있어서 유용하게 '인용' 되어 지 곤 한다. 뜬금 없이 날씨 이야기 따위로 인사를 건네도 '그러게-' 정도의 공감은 충분히 얻어낼 수 있는 그런 날 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늘 같은 날이면 '언제나 거기에 있지만 언제나 망설이게 되는' 이니셜 위 에도 과감히 더블클릭을 하고 말을 꺼내볼 용기가 생기는 것이다.

오늘 날씨 정말 왜이래?
그러게-

그래 그 날씨이야기 계속.
날씨이야기로 난 늘 뭔가 서먹함을 달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때로는 적정한 온도에 하늘은 맑고 바람이 선선하다 던가 하는 날씨가 몇 일 몇 주까지 지속 될 때가 있는데. 그럴 때엔 매일 똑같이 '너무 좋다' 라고 만 하다 보면 계속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러게- 가 아닌 그런데? 따위의 난감한 반문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적당히 날씨와 더불어 감정의 미묘한 떨림이라던가. 옛일을 뜬금없이 불러다 놓고 느끼하지 않을 정도의 회상조로 이야기 하기도 하며 다음 이야기로의 전개를 도모하는 것이다. 뜬금없지만 그런 연유로 날씨가 매일 변한다는 것조차 어쩌면 축복인지도 모르겠다.

아- 그런데? 날씨가 변덕스러워서 어쨌다는 거야?
딱히 어쨌다는 건 아니지만-

요즘 회사가 회사 이니만큼. 온통 인터넷을 통해서만 뉴스를 접하다 보니 뉴스 데스크 같은 그야말로 진정 데스크 위에서 아나운서가 생생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뉴스가 좀 그리웠었는데. 마침 오늘 기회가 닿아 그렇게 뉴스를 보게 되었다는 말이다. 허나 생각보다 뉴스는 너무 재미가 없고 그도 그럴 것이 거의 매일, 매 시간 실시간 뉴스를 거의 브리핑 받듯 메일로 받아 보다 보니 뉴-스러울 게 없었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그렇게 따분하게 뉴스 내용보다는 데스크가 어떻게 생겼는지 스튜디오 뒷 편 에서 완성도가 떨어지는 부분은 없는지 따위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이야기를 또 마주치게 된 된 것 이다. 오후 나절 내가 떠들고 다니던 그 멘트.

오늘은 날씨가 참 변덕스러웠죠?

그 이야기가 마치 나에겐, MBC 기상 캐스터가 정말 오랜만에 브라운관 너머 로그인 해 있는 나를 발견하고 용기를 내어 꺼낸 얘기라도 되는 것처럼 느껴졌는지 그렇게 나는 다시 뉴스에 집중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대기 상층부에는 차가운 공기가 흐르고 낮은 부분에 따뜻한 공기가 흐르면서 대기가 지금 상당이 불안하다고 설명해주고 있었다. 날씨얘기에 관해서는 매일같이 뭔가 다른 테마로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던 나로서는 솔직히 그녀의 날씨관에 냉소적일 수밖에 없었다. 고작 과학적인 근거 따위로 살을 붙이려 하다니...쯪 그래. 방송 뉴스도 별것 아니군 하며 다시 고개를 떨구려던 그 순간. 그 평범하게 생겼지만 똑똑한 MBC 기상 캐스터가 마지막 마무리 멘트로 인사를 하였다.

그녀는 그저. 한마디. 무심코. 그렇게 일상적인 말투로 내뱉은 말이었을 뿐인데. 나는 그 뒤로 몇 분간 잠시 멍한 채로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그것은 일생 동안 내가 들어본 날씨 이야기 중 최고로 위트 있는 말이었다.

내일은 오늘처럼 예측할수 없는 날씨가 지속될 것으로 예측됩니다.


날씨 이야기 끝-

망할, 어떻게든 연결만 되면 되는거 아냐?

느즈막히 시간에 일어나 옥상에 올라간다. 올라가기만 했지 사실 '옥상' 이라고 말할 수 있는 지면에는 한발자국도 내딛지 않았다. 폭이 좁은 문턱에 쭈그리고 앉아서 담배를 한대 피우며 앞 뒤로 끊임없이 중심을 잃는 무거운 몸뚱아리의 균형을 잡느라 종아리 근육을 피곤하게 사용했다. 종아리 근육 이외에도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어떤 생각들이 앞 뒤로 균형 없이 다녀갔는데. 이를테면 이런 것.

일어나자 마자 옥상까지 올라와서 꼭 담배를 피워야 하나?

오늘은 누가 들이닥칠까? 어딘가 나가야 하나?

아이 씨- 이 동네는 왠 전기 줄이 저렇게 많은 거지?

전기 줄은 꼭 무슨 몬스터가 잔뜩 뱉어 놓은 것처럼 창문을 가로질러 위에서 아래로 혹은 건물과 건물 사이에도 이어져 있었는데. 무례하기 짝이 없는 그 전선들은 가만 보니 죄다 초고속 인터넷 아니면 지역케이블 방송사의 것이 분명했다.

틀림없이, 전봇대에 매달려 선을 연결하던 케이블 회사 직원들도 이런 식의 지저분한 연결 방식은 거의 스스로도 용납할 수 없는 정도로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전문가 교육을 받았다면 적어도 선이 남는다고 해서 나머지 분량의 선을 돌돌 동그랗게 말아서 대충 전봇대 어딘가에 걸어두거나 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잠시 동안 그런 식으로 도시 미관과는 전혀 무관하게 대강 걸어두고 묶어두고 하는 우리동네가 겨우 그것밖에 안 되는 건가 하며 탄식을 하다가도 한편으로는 마치 내가 전봇대에 대롱대롱 매달린 케이블 업체 직원이라도 되는 양 그렇게 된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변론하고 있기도 했다.

지금이 일요일 저녁 8시쯤이라고 치자. 우리의 그 케이블 회사 직원이 전봇대 위에 오른다. 그는 대략 스물 다섯-에서 서른 사이로 이제 막. 전문가 과정을 수료하고 사회에 막 발을 내 딛은 사내이다. 마땅한 꿈은 없을지언정. 전기 배선에 대한 전문가 과정을 수료하면서 안정적이며 정돈된 배선에 대한 나름대로의 철학과 의무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철학과 책임감이 그에게 어떤 자신감과 자존심으로서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우리의 그 케이블회사 직원은 취직해서 처음 전봇대에 오를 때에 어떤 희열까지 느꼈을지도 모른다.

지역 케이블 회사마다의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면서 매일 소화해야 회선의 숫자가 많아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회사측은 그 동안 설치해 온 수백 세대 분의 회선을 전부 업그레이드 하기로 결정하였고 우리의 그 케이블회사 직원은 몇 안 되는 다른 직원과 함께 어제부터 밤새도록 그렇게 오늘까지 쉼 없이 옥상과 전봇대 사이를 오르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그는 정확히 백 쉰 다섯 번 째 전봇대에 올라가있다. 굵은 밧줄 사이로 힘없이 늘어진 엉덩이는 벌겋게 진물이 나올 정도로 닳고 달아있고, 어쩌면 눈치채지 못할 시간에 아예 바닥으로 추락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에게 소싯적에 배웠던. 안전이나. 정돈된 배선 따위는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직도 올라야 할 전봇대가 수 백 개가 남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백 쉰 다섯 번 째 전봇대에서 백 쉰 다섯 번 째 회선을 이제 막 연결하고 났더니 예상치도 못한 케이블이 수 미터 가량 남았다. 평소 같았으면. 적당한 길이로 정리하여 최대한 안전하고 깔끔하게 그 남은 부분을 갈무리 하고 내려 갔을 테지만. 그는 그 동안 나름대로 지켜왔던 소신 따위는 이제 포기해 버리고 싶었다. '이런 망할. 어떻게든 연결만 되면 되는 거 아냐?' 라고 어쩌면 아무도 없는 밤중에 그렇게 소리쳤을지도 모른다.

재미없지만 쓸데없이 케이블회사 직원 역을 자처해서 생각해보고 난 뒤엔 이미 담배가 필터까지 타버린 상태였지만. 좀처럼 생각하는 일을 멈출 수가 없다. 가만 보니 엉키고 설킨 전깃줄은 밀림의 덩굴 따위를 떠올리게 했고. 건물 벽마다 무수히 제각각 붙어있는 전기 계량기는 버섯 군락을 연상시켰다. 갑자기 주거지 일색인 화곡동 일대가. 무섭도록 자라난 밀림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말하자면 한정된 어떤 생태계 내에서 각각의 생명체가 살아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펼쳐야 하는 무분별한 욕심과. 경쟁 그 야생의 의지 자체로서 말이다. 케이블 업체에 비유를 해보자면. 한시라도 빠른 시간에. 많은 회선. 즉 덩굴 을 하늘에 가득 채우는 일이. 하나의 생명 집단으로서 우위를 차지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 필연적인 몸부림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집단이 혹은 개인이 살아남기 위한 일에. 생태계 전체의 미관이나 다른 생명체의 불편 따위는 염두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왜 갑자기 인공조형물들에게 생명체의 번식 욕을 가져다 붙였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연유를 대강 추론 해 보건데, 가끔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난 인간성 자체를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극도로 부인하고 싶어진다거나, 동시에 그런 본성들을 대놓고 폄하하고 싶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일종의 결벽, 혹은 강박들이 조금 부질없고 쓸데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그 이유인 것 같다.

이성적이고 절제된 어떤 생각들이 좀더 세련되고 수준 높은 어떤 것이라는 관념 때문에 보지 못하거나 놓치는 것이 있어서는 안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따위. 또는 그런 관념들 때문에 살며 참고 또 참아야 하는 근심과 걱정 혹은 자기 희생이 얼만큼이나 될지 그 누구도 모른다. 어쩌면 나도 매일같이 아무도 없는 곳을 향해 '이런 망할, 어떻게든 연결만 되면 되는 거 아냐?' 라고 소리치고 싶은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화곡동의 주택가를 누비고 있는 저 난잡하고 혼란스러운 케이블들이 인간이 생명 자체로의 존재목적에 더 충실한 어떤 것이 아닌가 하는 조금 얼토 당토 않은 결론을 내려버리고는. 그렇게 머리를 긁적거리며 옥상을 내려왔다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며.

돌아가고 싶은 혹은 돌아갈 수 있는
어떤 곳. 어떤 사람. 어떤 기억.
그런게 있는지 뒤를 돌아본다.

지금은 돌아갈 마음이 없지만
돌아가야 한다면 돌아갈 곳은 없는것 같다.
겁이 없는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오며 그런생각을 한다는건 조금
아이러니다.

Don't want wanting

밤을 꼬박 새버렸다.
밤 새 그놈의 퀄리티 라는 이름을 가진 무형의 간수와 신경전을 벌이다가. 아침이 되면 <난 밤새 고생하였소> 라고 이마에다가 떡하니 써붙이고 나면, 퀄리티고 뭐고. 졸린 눈 비비며 출근하는 이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유유 자적 짐을 싸들고 괜스레 비장한 기분에 젖어 퇴근을 하게 된다. 아마 한 십년쯤 복역하던 죄수가 출감할때의 표정 쯤을 상상하면 되려나- 아침에 퇴근할 때엔 언제나 햇빛이 요란스럽게도 맑다.
햇볕이 좋으니- 지하철 보다는 버스가 낫겠다며 또 한사코 가까운 지하철 역을 지나 버스정류장 까지 걸어간다- 사실 쓰러질 만큼 피곤한 그런 상태도 아닌데 괜히- 무언가 전부 소진해버렸다는 기분이 들면 살짝 뭔지 모를 성스러운 감정이 생겨버린다. 그렇게 이런 저런- 생각과 기분들에 아무런 저항없이 몸을 맡기고 버스정류장에 앉아있다가 문득 그런 기분에 휩싸이고 말았다. 어떤 기분- 이라고 하기엔 조금 부족한 듯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생각이라고 하기엔 좀 가볍다.

원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을 원하는 그런 기분. 그런 생각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또 다시 문득- 아주 짧은 추억하나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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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 삼년전-
아마도 여름 밤 이었던 것 같은데. 신사동 골목의 어떤 편의점 의자였던 것 같다. 같은 직장 동료 둘 과 함께 버드- 를 하나씩 입에 물고 있었고, 근처에 오래된 아카시아 나무라도 있었던 건지 어디선가 한가득 여름 밤 향기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나를 포함한 그 셋은 그다지 공유할 만한 화제가 없었던 터라, 그저 각자 속으로 히죽이며 옛일을 떠올리고 있었다거나, 우스운 기사거리를 머릿속에서 재빠르게 기억해내고 있었다거나, 아니면 그저 살짝 눈을 감고 밤공기를 즐기며 머리속을 비우고 있었던것 같다. 그 때 옆에 앉은 동료가 불쑥 그 앞에 앉은 동료에게 물었다.

'A님 은 나중에 뭘 하고싶으세요?' 라고,

(뜬금없긴...!)

그 질문의 주인공은 평소에 좀 지나치게 센티멘틀 해지고 또 지나치게 그런 기분을 생색내려 들고 위로받고 싶어하는 개인적으로 좀 기피하는 스타일의 동료였고. 그 질문을 받은 A라는 사람은 비공식적으로만 나와 친분을 쌓고 있던 분이었다. 그런 식으로 셋이 모이고 그 중 둘이 공공연하지 않게 친한 경우, 겉보기엔 셋이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것 같지만 사실 눈빛이든, 손동작이든, 혹은 기침소리 따위를 통해 모종의 보이지 않는 테이블이 따로 마련되기 마련,

'음... 음... 저는요 아무 것도 하고싶지 않는 그런...'
'목적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 목적이에요.'

'네?.. 목적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 목적이라구요?'
'어떤 의미인지 너무 어렵네요...'
'저는 말이죠-'

(목적은 다른데 있었군!)

어떤 대답이 나올까 내심 키득거리며 귀기울이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가볍지 않은 대답이어서 놀랬지만, 한편으로는 그 질문을 한 동료가 말을 잃고 블라블라 자기가 하고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떠들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 그 이후로는 기억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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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런 일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엔- 사실 그 말의 의중을 알 수 없었고. 아마 지금도 그 친구가 말하려 했던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문득 내 입으로 그때 그 친구와 같은 말을 되뇌었다는 사실이 의미있는 것이다. 내가 무심코 뱉은 그말 '원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음' 은 아마도

'아무 것도 책임지지 않은 채로 살고싶다..' 라는 뉘앙스 였던 것 같다.

그때 그녀도 나와 같은 생각과 기분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이었을까? 문득 지독하게 그 이야기를 그때 그분과 다시 나누고 싶었지만- 버스가 심하게 덜컹거리고, 갑자기 살짝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해서, 햇볕이 너무 눈부셔서, 버스에 사람이 너무 없어서, 졸음이 밀려와서, 그 런 생각들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아니, 그렇게 말도 안되는 변명들을 늘어 놓으며 다른 상념들에 숨어 잊어버리도록 애를 써야했다.

안타깝지 않은가-

살다가 문득- 이렇게, 리얼타임이 아니라 일년이든 삼년이든, 한 참 뒤에서야 어떤것을 공감하게 될 때가 있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럴 때에 그때의 그사람과 다시 회자하여 그 이야기를 다시 나눌 수 있는 경우는 흔치 않거나 거의 없다.
왜냐하면,

노력하지 않는 상태이거나.
혹은 노력할 수 없는 상태이거나.
눈치채지 못할 사이에 이미 이만-큼 멀어져 있거나,
아니면 내가, 혹은 그 사람이 너무 변해 버렸을 거라 느껴지거나.

잠안오기 대회- 빵

간단해진 문제 복잡하게 만들기 선수와
복잡해진 문제 간단하게 만들기 선수가
달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선수니까 달려야 한다고 가정한 것입니다.
-습니다. -입니다. 라는둥 말투가 되버린 연유는
선수들이 달릴때엔 뭔가 스포츠 아나운서가 나타나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 어찌됐건 우리의

간단해진 문제 복잡하게 만들기 선수와
복잡해진 문제 간단하게 만들기 선수가
달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자, 과연 누가 이길까요?
누가 이기는가가 중요해져버린 이유는
두명의 다른 선수와 아나운서가 있을때엔 뭔가 승부를 가려야 할 것 같은
요구 때문입니다.
...
...

고즈넉한 오후 애잔했던 손톱깎기.

손톱이 너무 길게 자랐구나-
하며 똑똑 하나씩 분지르며 앉아있다.
검지손가락 손톱 아래 살갗이 살짝 헐어있다.
몇주전에 강아지와 놀다 다쳤던 일이 생각났다.
손톱을 손가락으로 국 국 눌러 휴지통에 버리고나서
무슨 이유에서인지 손톱깎기에 접혀진 끌을 펴고나서
슥-슥 모난 손톱을 다듬었다. 문득
울컥 하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라고 해버리면 되려 글을읽다 되려 화가날지도 모른다.
사실 눈물 운운하는건 살짝 머릿속을 스친 생각일뿐이고
내가 손톱을 다듬다 느낀 감정은. 말하자면-
강희안(姜希顔) 의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 에서처럼
잠시 말을 잃고 하염없이 수면을 바라볼때 느끼는
일종의 애수. (애수哀愁 라는 표현도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래 만약 영화를 보다가 주인공이 나처럼 눅눅한 오후에
컴컴한 방에서 손톱을 다듬고 있었으면 틀림없이 난
마음속으로 이마를 탁 치며 탄식했을꺼야.
왜 그런 감정이 솟아났는지는 끝까지 말안하고 얼버무릴셈이야?

음- 왜냐면 아마도. 그렇게 내 오른손과 왼손을 지긋이 응시하며
그것들을 만지고 다듬는다는 것 자체를 느낄수 있었다는것이
그런 감상에 젖게 만든것 같애. 응시하고 만지는 것을 느낀다고?
그따위 것이 새삼스러울 수 있느냐고? 새삼스러울수 있어!
그래 그따위 것들이 새삼스러워서 왠지모르는 그런 감정을
느낀거지-. 더 많은 생생하고 살가운 느낌들에서 멀어지고
그런것들을 좀더 세월이 지나 생경하고 새삼스럽게 느끼게 될때
그때는 아마 진짜 눈물이 흐를지도 모르지-.

그런거야- 아마 오늘같은 하늘에- 오늘같은 쌀쌀함에
그런것들을 떠올리게 된다면 말야.

THE SIMS

THE SIMS를 하다보면.
나의 심이 정상적인 직장생활을 하고 승진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욕구들을 나타내는 게이지가 충분하게 찬 상태에서 회사에
보내야 한다. 그리고 각각 직업에 맞게 요구되는 능력치 레벨을 올려야 한다.
그런 요건들을 모두 만족시키면서도 나의 아바타가 늘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인간관계 지수만큼은 늘 낙제수준 이라는 것.

그 작은 심들의 세상에서도 요구되어지는 적정수준의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일만큼 귀찮은 일은 없다. 까딱하면- 우스꽝 스러운 효과음뒤에
'방금 친구 한명을 잃었습니다 :(' 라는식의 경고창이 떠버린다.
심들은 적어도 이틀에 한번꼴로 전화를 걸어 친구들을 초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다운타운으로 놀러나가 선물이라도 건네주어야
그나마 정상적인 심간관계가 유지되는 것이다. 뭐 게임이니까-.
고작해야 수백가지의 조건문따위의 로직으로 꾸며진 프로그램에 불과하겠지만...

사실 요새 게임 속에서나 나올법한 우스꽝스러운 그 효과음을 몇번 들었다.
'방금 친구 한명을 잃었습니다 :(' 라는 경고창도 몇번 마주쳤지만.
난 그 메시지가 '경고'라는 의미를 담고 날아온다는 사실을 경멸하는데에만
열중하고 있을뿐. 게임속에서 처럼 일말의 아쉬움이나 반성없이.
확인 버튼을 누르고 다시 play 하고 있는 것.

P양 은 내게 '왜그렇게 사니?' 라는 경고창을 띄워줬고
J군 은 내게 '너 많이 변한것 같다'라는 경고창을.
K양 은 어제 내게 '정말 널 이해 못하겠다' 라는 경고창을 띄워놓았다.
생각해보면 그 셋은 전혀 다른 삶을 살고있고 나이도 거주지도 다르지만
참 비슷한 사람들이다. 적어도 이삼년에 얼굴 한번 볼까말까한 친구 아닌
친구들이라는- 그것.

저런 이야기들은 드라마 속 불한당들이나 듣는 이야기지 싶었는데
내가 저런 이야기들을 줄기차게 듣게될줄은 몰랐을뿐더러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게 될줄은 더더욱 몰랐고-.
무조건 반사. 팝업광고창 끄듯. 무심결에 잊혀진다.

게임 심즈 속의 주인공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 의지대로 움직여주지만
어떤 욕구이든 게이지가 빵이 되면 나를향해 두팔을 번쩍 들고 하소연을
하기도 한다. 더이상 연기하기도 지겹다는듯 애처로운 표정으로-.

나도 가끔. 그렇게 어딘가를 향해 하소연 하기도 한다.
너무 외롭거나, 너무 지치고 힘들때.
심즈가 하소연 할땐 침대로 보내는게 (y)

깨어나다

꿈또는 잠에서 깨어나다.
땀을 닦고나니 새벽공기가. 무겁게 스며든다.
힘들게 웅크린 몸. 가슴 안쪽 한껏 끌어안은 이불.
아픈 꿈이었나...
발끝으로 이불을 끌어내리고.
허공에 시선을 쏟아놓고
찬찬히 생각해본다.

어떤 순간들은 흐릿하다.
따뜻한 체온,
웃음소리.
벅찬가슴.
감. 촉.
믿어지지 않아 더듬거린다.

어떤 순간은 선명하다.
차가왔던 공기.
거친 입김.
움켜쥔 옷.
분노.
떨림.
눈물.
타는듯한 가슴을 쓸어내린다.

다시 눈을 비빈다.
아직 이른 시간이다..
이내 날이 밝고, 어머니의 인기척이 들릴테고,
찬공기에 소매를 꼭 걸어 잠그고
사람들 속으로 뛰어들어야 할테지..

아직 이른 시간이다..
깨어나기엔 아직 이른시간..
다시는
이토록 깊은 잠에 빠질 수 없을지 모른다.
어쩌면
또 다른 같은 꿈을 매일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