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t Highway 2004

어디요?

화곡 역 이요.

다른 어떤 불필요한 친절이나 주저함 없이. 그 택시기사는 목적지만을 묻고서 바로 악셀을 밟고 질주를 시작했다. 도심에서 빠져 나오기 전 몇 분간은 택시기사가 살고 있는 그 택시의 내장을 살펴볼 여유가 있었는데. 나는 의례 택시를 타면 그렇게 운전할 때 핸들은 어느 손으로 제어하는지, 어느 정도 알.피.엠 에서 기어를 변속하는지, 택시기사면허증의 젊었을 적 사진은 어떤지 슬쩍 지금의 모습과 어떻게 다른지 따위를 관찰하곤 했었다.

차 안은 한 때 유행했던 형광 빛 발광물질로 온통 경박하게 튜닝되어 있었지만. 카 오디오에는 관심이 없었는지 거의 처음 출고 당시 그대로의 오디오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서 요란스러운 그 형광 빛 튜닝과 대조되어 전체적으로 초라하고 촌스러운 느낌 이었다. 꼬마전구 비슷한 그 발광체는 불안스럽게 철사로 여기저기 고정되어 있었는데. 새벽 네시에 색안경까지 끼우고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터프하게 핸들을 꺾고 있는 저 손으로 그 디테일한 작업을 하고 있다고 상상하니 괜히 좀 우스꽝스럽다 못해 애틋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렇게 여유롭게 차 안을 들여다보며 운전기사의 촌스럽고 소심한 취향에 땅땅땅 평점을 메기고 나서 보니 어느 새 택시는 심하게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채 올림픽 대로로 진입하고 있었다. 이내 방향 지시등도 켜지 않고 거칠게 고속도로로 합류한 그는 그때부터는 마치 그런 나의 평가 따위는 우습지도 않다는 듯 일 순간 나를 어떤 절대공포로 몰아넣고 있었다.

순식간에 150에 육박하고 있는 게이지를 바라보며 나는 한껏 몸을 낮추고 내가 타고 있는 이 미친 택시기사의 핸들링에 온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는 마치 자신의 남성다움으로 나를 한껏 눌러주겠다는 양, 내 몸이 왼쪽 오른쪽으로 기우뚱 거리는 것에는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짐짓 노래까지 흥얼거리고 있었는데 나는 한 순간 저 인간이 부지불식간에 내 생명의 한쪽 끝을 꾸욱- 움켜지고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사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여간 불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분 전에 내가 애틋한 마음으로 비꼬던 그의 남성성이 이제는 그의 남성다움을 증명하기 위한 제물로 내 생명을 내주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어쨌거나 이미 속도 게이지는 백오십을 넘어버렸고 더 이상 상황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상징하듯 부들거리며 계속해서 제가 세운 기록을 경신하며 떨어질 줄을 몰랐다. '아저씨 천천히 가셔도 되는데요-' 라는 말로 그를 회유하려던 생각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자신의 터프한 드라이빙에 몰입한 그의 흥을 깨버리거나 하는 일 따위는 오히려 그를 모종의 승리감으로 승화시켜 더 흥분하게 만드는 일 같았고 어쩌면 나는 그에게 그딴 식으로 쉽게 지고 싶지는 않았는지도 모른다.

좋은 방법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떻게든 시위하고자 하는 마음에, 그리고 그에게 이런 식의 무모한 레이싱이 나의 경우엔 전혀 소용없는 일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고자 나는 용기를 내어 너무 따분하다는 양 몸을 축 늘어뜨리고 고개를 젖혀 자는 척 해보려 하였다. 한 30초 가까이 그렇게 눈을 감고 있었을까. 갑자기 덤프트럭에서나 나올법한 빼-엑 거리는 경적소리에 정신을 번쩍 차리고서 보니 무슨 현실 계에는 존재하지 않을 법한 덩치의 트럭이 제 키의 두 배 쯤 되는 짐짝들을 싣고 아슬아슬 하게 내 옆을 비껴가고 있었다. 어이쿠 말하자면 현실 계에서 영혼 계로 들어서는 터프한 길목을 방금 지나친 것이었다.

그 덤프트럭의 울부짖음이 어찌나 끔찍하게 느껴지던지 잠시 공포를 덜어볼 요량으로 이어폰을 귀에 꽂고서 플레이 리스트를 뒤적거릴 것도 없이 어떤 음악이든지 들어보려 하였다. 전주가 흘러나오는 순간 제니스 조플린의 써머타임 라이브 트랙 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이 세상 모든 슬픔과 이세상 모든 고통을 한데 모아놓고 그 둘을 끊임없이 마찰하고 분쇄시켜야만 하는 운명을 지닌 어떤 끔찍한 기구가 내는 소음 같았다.

어젯밤에 한참 라이브동영상에 감탄했던 터라 다시 그 아련한 분위기 속에 몰입하고 싶었지만 도대체 일분 일초도 음악에 집중할 수 없었다. 나는 언젠가 내가 삶을 마감할 때 BGM으로는 무엇이 적당할 지를 생각해본 적이 있었지만 적어도 제니스 조플린은 아니었다. 어쩌면 몇 분 뒤에 한강 둔치에 끔찍한 시체로 나가 떨어져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 때에도 만약 내 귓가에서 제니스 조플린의 서머타임이 흐르고 있다면 얼마나 괴기스럽겠는가.

신경질적으로 이어폰을 다시 구겨 넣고 나서부터 나는 약간 정신이 혼미해진 채 나를 지배하고 있는 그 공포를 직시하며 그 때문에 생기는 두려움에도 솔직해지고 있었다. 전에도 종종 택시를 타면 교통사고의 순간을 상상해 보곤 했었는데 나름대로 사고 뒤의 죽은 내 시체에 대한 어떤 미적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예를 들자면 죽었을 때 어딘가 신체 일부가 찢겨져서는 안 된다 라던가. 우스꽝스러운 포즈로 굳어버리면 안 된다 라던가 표정은 어떻게 해야만 뭔가 품위가 느껴질 것이라던가 하는 그런 식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되도록이면 다리를 곱게 모아 흐트러짐이 없도록 긴장해야만 했다. 뭐 때로는 강변북로를 타게 되면 강변북로 특성상 도로를 탈주하여 한강으로 빠지는 것 또한 상상해 볼 수 있는데 물에 빠져 죽는 것 만큼은 절대 가정하고 싶지 않아서 그 경우에만 온갖 탈출 방법만 있을 뿐 죽은 뒤의 모습은 없다.

그렇게 한 15분 동안 마치 내가 핸들을 잡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닥쳐올지 모르는 사고를 대비하기 위해 잔뜩 집중하여 운전기사의 행동을 관찰하고 예측하고 있었는데, 그 때 까지, 그러니까 서강대교를 지날 때까지 내게 유일한 구원 되 주었던 것은 드문드문 도로 위에 서있는 속도위반 탐지기 뿐이었다. 택시 기사는 대체로 여유만만한 자세로 마치 자신의 택시가 서울을 남과 북으로 찢어놓고 있다는 광적인 환상에 도취 된 듯 한껏 고양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가 여유롭다는 것이 한편으로 내게 위로가 되기도 하였지만. 그 순간에도 나는 어떤 한가지 불길한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BMW G4 기종 이라던지 AUDI TT 따위가 우리의 택시기사를 비웃듯 차선을 넘나들며 정면으로 유유히 사라지는 일 이었는데. 그런 경우 안하무인 격으로 제 차를 앞질러간 차를 추월하기 위해 순식간에 레이싱을 펼치는 택시를 몇 번 경험해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속도로를 달린지 20분쯤 지나도록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새벽 5시를 향해갈 수록 고속도로는 한산해졌고 어쩌면 마치 올림픽도로가 나와 우리의 택시기사를 위해 마련된 어떤 잘 정돈된 궤도인것 같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여의도 를 지날 때 즈음엔 거의 미소를 지을 수 있을 만큼 평화로운 기분이었는데 여유롭게 구부러진 도로 위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떠내려가는 노란 나트륨 불빛에서 어떤 템포를 느껴서인지 아니면 마치 로스트 하이웨이 영화속에서 처럼 헤드라잇 아래로 스치는 차선의 움직임이 몽환적인 매력이 있어서 인지는 알 수 없었다.

지금 생각엔 아마도 택시 한편에 붙어있는 택시운전기사 자격증에 붙어있는 사륙사이즈 증명사진에서 어떤 위안을 얻은 것 같다. 그 사진 속의 남자는 삼십대 초반이 가질 법한 사회적인 안정에 대한 부담감을 몸소 표정으로 대변하고자 하는 듯 잔뜩 긴장한 듯한 눈빛으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는 에메랄드 빛이 살짝 도는 와이셔츠 위에는 얇은 스웨터를 걸치고 있었는데 마치 그 시대 아버지들이라면 한번쯤 소화해 내야 만 하는 촌스러운 컬러의 무늬가 느슨하게 도안된 스웨터였다. 그 넉넉한 사진속에서 적어도 이 아저씨, 아니 이 아버지라는 상징은 나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 라는 어떤 안도감을 얻었던 것이다.

목적지인 화곡 역을 가기 위해 강서구청 쪽으로 들어서자 택시 안에 설치된 형광튜닝 보다도 몇 배는 더 천박한 네온이 번쩍 거리며 우리 곁을 지나쳤다. 살짝 긴장이 풀리고 술기운이 올라 졸음이 몰려왔지만. 뭔가 자꾸만 우울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가 핸들을 쥐고 있었다면 강서구청 사거리에서 차를 돌려 다시 그 정돈된 하이웨이를 내달리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어제도 오늘도 혹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작은 걱정과 망상 때문에 쓸데없이 죽음 운운하며 두려워 떨고 있는 그런 내 모습들이 측은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매 순간 걱정하고 있는 사건들은 언제나 일어나거나, 혹은 일어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이다. 멈춰서는 안 되는 고속도로 위에 버려진 이상, 결국은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을 그 최악의 상황들을 애써 염려하며 쭈뼛 거리는 것 보다는 터프하게 꾸-악 악셀레이터를 밟는 편이 더 멋지지 않겠는가. 노란 가로등 불빛이 떠내려가는 템포에 맞춰서 서머타임 이라도 흥얼거리면서 말이다. 결국 결론은 진부하게도 용감하게 살자 따위가 되어버렸지만. 기분은 한결 나아진 것 같았다. 그런 깨달음이 고속도로 위에서가 아니라 한적한 2차선 도로에서 떠올랐다는 것이 좀 의심스럽긴 하지만- 훗.

잠시 동안 영문도 모른 체 살인자의 혐의를 뒤집어 썼던 그 무고한 택시기사는 2만원 가량의 포상금을 받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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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time / in album Live at Amsterdam '69

Summertime,
Child, you're living's easy.
Fish are, fish are jumping out
And the cotton, Lord, cotton's high, Lord, so high.

Your daddy's rich
And your ma, honey I think she's a mighty good-looking babe.
I think she's looking pretty fine to me now.
Hush, baby, baby, baby, baby, baby, baby, baby,
No, no, no, no, no, don't you cry.
Don't you cry!!!

One of these mornings
Child, you'll rise up singing baby,
An' since you gotta go, honey, spread your wings,
You can take, take to the sky,
Lord, the sky.

Until that morning,
Honey, n-n-no, nothing's gonna harm you babe.
I said, honey, no one's ever gonna let you down,
They wouldn't do it.
Hush, baby, baby, baby, baby, baby,
No, no, no, no, no, don't you c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