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출근 길에 매끈한 종이 비행기를 손에 든 검은 정장의 사내를 보았다. 조금 의아한 풍경일 뿐 그렇게까지 인상깊게 여길 필요는 없었는데 나는 아직까지도 그 날렵한 비행기의 동체와 날개에 새겨진 빨간 격자무늬 같은것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일년에 한번 혹은 이년에 한번 쯤, 꼭 그 고무동력 종이 비행기를 만들 곤 했었는데. 하루종일 내내 궁굼했던건 꼬리날개 부분에 선명하게 빨간 색으로 새겨져있던 제조사의 이름이었다. 다행히- 방금전에 그것이 cosmo 였다는 것을 기억해 냈고 그 업체가 아직도 종이 비행기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어 적지않이 놀랐다. 마치 너의 유년은 언제라도 증명할 준비가 되어있으니 아직은 걱정말라는 듯-
뭔가 뚝딱뚝딱 만들고 그리고 색칠하는 데 만큼은 자신있다고 여겼었지만 어릴적 내가 만든 종이 비행기는 유난히도 잘 날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늘 비행기 조립 시간이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COSMO 홈페이지에서 가만히 그 심플한 비행기를 보고있자니 얇은 나무 살을 휘어서 정교하게 고정시키고 나무가 뒤틀리지 않게 살짝 풀을 발라 종이를 팽팽하게 접착시키는 그 공정들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고 동시에 그것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내 작은 손과. 소음. 가위, 풀, 책상,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믿을수 없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날개에 풀칠을 너무 많이하면 무거워서 날지 못해- 라고 말하던 짝꿍의 목소리와 그 억양까지도 떠올릴 수 있다는 듯.
동시에 초등학교 시절에 만들었던 여러가지 것들이 생각나기 시작했는데, 일주일에 한번쯤은 문구점에서 사야 했던 노란 찰흙이나, 더 어릴적 집을 만들고 총을 만들곤 했던 파스텔톤의 수수깡. 수수깡! 그런것들이 그렇게 갑자기 그렇게 무책임하게 자꾸만 떠올랐다. 처음 비닐을 벗겨냈을때의 찰흙의 차가운 감촉이라던가. 약간의 끈끈함. 혹은 믿을수 없을 만큼 가벼웠던 수수깡의 무게감과 컷터칼로 잘라낼때의 찌릿한 소리. 그런 것들이 갑자기 못견디게- 그리워진 것이다. 그런것들은 언제부터 그렇게 새하얗게 묻힌 것일까?
그렇게 유년의 기억을 더듬거나 그것에 짙은 향수를 느낀다거나 할때, 언제인가부터 나는 그것을 어떤 신호로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오늘 아침 종이비행기를 손에 들고 있던 그 검은 정장의 사내는 내게 그런 메세지를 전하기 위해 그자리에 있었던 것이고, 그래서 난 지금 그 신호를 받고서 대처 방안을 모색 중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