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의 코너, 궁지의 호주머니

그림에 시간을 담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 한 적이 있다. 같은 이유로 그림을 감상할 때에도 다른 것 보다 그 작품에 담긴 시간에 더 주목하게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림 그리는 사람의 ‘고독의 시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고독의 시간이 주는 감동은, 작가의 노고에 대한 찬사나 고통에 대한 연민과는 관련이 없다. 작가가 그 작품을 구실로 최대한 오랜 시간 동안 화폭 안에 들어가 안도하고 한 획 한 획에 온 신경을 쏟아붇고 그를 괴롭히던 것들로부터 뚝 떨어져나와 평정을 되찾았음에 틀임없는 그런 안도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작가가 숨어 있었던 획들을 따라가다보면, 나 역시 그 획들 사이에서 그의 감정과 마음을 조금은 읽을 수가 있다. 그것이 내가 작품을 읽는 유일한 방법이다.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려 무심코 어딘가로 기어들어가듯 그림에 고개를 쳐박고 색을 채우고 있는 나를 보고 있자니,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는 시간 동안을 그림 속에 숨어 살았는지는 가늠하기조차 어려웠다. 그림에 이것 저것 가져다 붙이는 제목과 그에 따라오는 의미들은 어쩌면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오직 그에 담겨있는 시간 뿐이다. 그림 안에 있을 때에 느끼는 평화는 물론 잠시 뿐이며, 언제고 다시 돌아 나와야 하는 것은 틀림 없는 일이다. 그림 밖에 있을 때에는 무언가에 정신을 팔려 있거나, 추위에 떨듯 불안해하거나 둘 중에 하나이다. 그림에 시간을 ‘담는다’고 표현했지만, 사실 ‘살다’라는 표현이 더 적당할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