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정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람- 하며 염세적이고 허무주의적인 말들을 속으로 뱉아낸다. 그 모든 ‘것들'에 대한 부정이라기보다는 ‘소용'에 대한 부정이다. 어느 순간 그림들 조차도 그렇게 '소용'의 산물들인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렇게 보이는 순간이란, 내 주변에 쌓여 있는 물건들이 죄다 어떤 목적들을 가지고있고 또 그 목적에 충실하라고 내게 명령하는 느낌을 줄 때이다. 그림 역시 저마다 자신의 소용과 운명을 내게 묻고 하소연한다.

오스트리아, 빈의 한 회사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 입사 초기에는 워킹비자 없이 일을 하고 있었던 터라 그곳에 남아야 할 지 돌아가야 할 지 막막하기만 하였다. 나를 그리로 데리고 왔으면서도 그들은 사실 아무런 대책이 없는 것 같아 보였다. 우연히 퇴근 길에 마주친 보스에게 하소연하듯 물었다. “내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거니?” 장신에 멋진 은발 머리를 한 마티아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흔들며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암 낫 리스폰서블 포 유어 퓨쳐!”

내 그림들에게도 손을 흔들어보이며 그렇게 말해야할까. 모든 관계와 소용, 애착들로부터 연기처럼 떠나고 싶어지는 그런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