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에서 의미를 찾는 일

지난봄에 전시 참여 제안받고는 창덕궁에 실사를 나갔었습니다. 경복궁에 비해 잘 가보지 않던 곳이기도 하고, 또 비원은 가보았을지언정, 이곳 낙선재까지 와보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막상 와보니 덕수궁의 석어당처럼 단청이 없어서 그런지 오히려 더 자연스럽고 고풍스러운 매력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몇 채의 집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방 한 칸 한 칸이 궁궐에 비해 소박하게 느껴졌습니다. 궁궐에 내가 하룻밤 머물고 싶은 곳을 찾아야 한다면 아마도 이 낙선재 끝 가장 구석진 방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아늑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볕이 잘 드는 마루 한가운데에 어떤 그림을 그리면 좋을까 생각하다, 문득 뒤뜰에 석축으로 쌓은 화단 같은 것이 보였고, 돌아가 보니, 웬 커다란 괴석 두 개가 안주인처럼 거대한 기단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괴이하다면 괴이하고, 또 평범하다면 평범한 이 돌이 무에 그리 중요했을까? 싶으면서도, 봄에 저 석축 위로부터 층층이 심어진 꽃나무들이 돌 뒤로 가지를 늘어뜨리고 꽃을 흐드러지게 틔워내면 참 장관이겠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돌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것으로부터는 아무런 영감을 얻지 못했습니다. 

작업실에 돌아와 종종 그림을 구상하면서도, 여전히 그 돌들이 마음에 걸렸지만, 한동안은 도무지 무슨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습니다. 사진으로 담아온 돌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게, 돌이 돌일 뿐이지 뭐 대단한 것 있겠냐-‘싶으면서도, 그것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림 생각은 안     나고 자꾸만 이런저런 다른 상념에 빠져들곤 했습니다. 이미 돌은 안중에도 없고 어제의 고민과 오늘의 걱정, 또 내일의 일들을 계획하느라 마음이 바빴습니다. 그러고 보면 그게 다 돌 때문인 것만 같았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넋 놓고, 물멍, 불멍-하며, 마치 그것들을 바라보면 모든 근심 걱정이 다 잊힐 것처럼 말하지만, 저는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오히려 생각이 더 많아질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이곳 낙선재에 머물던 왕실의 인물들도 답답한 일이 있을 때마다 이곳에 나와 돌을 감상한다는 핑계로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돌을 바라본다고는 하지만 꺼끌꺼끌한 돌이 마치 매끈한 거울처럼 나를 바라보게 만드는 것입니다. 

얼마 전 아내와 코펜하겐의 근교에 있는 루이지애나 미술관에 갔었습니다. 우리는 미술관 관람을 끝내고 미술관이 접해있는 작은 해안가에 가서 올여름 첫 해수욕을 즐겼습니다. 그러다 문득 예쁜 돌멩이를 주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리저리 돌멩이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괜히 경쟁심이 생겨 더 예쁜 돌을 줍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니던 우리가 우습게도 여겨졌지만, 그때는 그렇게나 진지했습니다. 마치 ‘더 예쁜 돌’이라는 게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죠. 각자 돌의 색상을 기준으로 찾기도 하고 또 조형을 기준으로 찾기도 하고, 쥐었을 때의 촉감이나 뭔가를 닮은 형상을 기준으로 삼기도 했습니다. 둘 다 미술을 전공해서 그렇기도 하겠으나, 돌 하나 찾는데도 그토록 높은 미적 기준을 들이대는 우리가 우스워서 깔깔 웃기도 했고 결국 애써 찾은 돌멩이들을 바다에 던져버렸습니다. 

아마도 이 그림들은 그런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그린 그림일 것입니다. 아무 의미 없는 돌을 바라보면서도, 자신을 투영하고자 하는 인간의 마음. 그리고 아무런 의도가 담겨있지 않은 자연 속에서도 그것의 목적을 찾고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사람의 본성. 반면 그런 우리를 바라보며, 그저 자연스럽게 있으라-고 말 하는듯한 돌의 모습을 그려보고자 하였습니다. 

창덕궁 낙선재에서 열리고 있는 제4회 <K-헤리티지, 이음의 선> 전시에 걸린 그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