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그럴줄 알았어

한마리 뱀이 허물을 벗는 속도는 어느정도 될까? 광화문 지하보도가 허물을 벗듯 그토록 오랜 기간 공사를 하더니만 이제 완성이긴 한가보다. 대형 냉장고에서 썰어 온 듯한 금속재로 치장한 천정은 꼭 금방이라도 떨어져내려 몸을 두동강이 낼 듯한 작두 같기도 하고, 그것이 떨어지면 곧장 가장 끔찍한 소리가 날것 처럼 바닥은 차가운 대리석재로 마감 되어 있었다, 중간 통로엔 왠지 지하철공사에서만 기획할 수 있을 것 같은 이른바 '시민전시공간 ' 같은 것이 빠짐 없이 마련 되어 있었고, 결정적으로 그 통로의 중앙 벽면은 황토- 따위로 이루어져 있었다. 뭐-든 삐딱하게 보자면 한없이 삐딱하게 볼 수 있고, 좋게보자면 또 한없이 좋게 보아줄 수 있는데, 광화문 지하보도에 대해서만큼은 꼭 삐딱하게 보기로 작정했나보다. 뭐랄까- 또 모럴바운더리 같은걸 들먹이면서 우리의 영지에 무슨짓을 해놓은거야! 라고 소리치고 싶은게지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게 반쯤 마비된 오른손 엄지와 검지, 중지로 덥썩 처음 집어들은 음반은 엘리엇 스미스의 유작앨범- 그의 본명이 스티븐 폴 스미스였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에 대해 살짝 미안해 했고- 파이트클럽에 서 잭의 얼굴을 끌어안던 그 덩치의 이름이 스티븐 밥 폴슨이었던가 아니면 로버트 밥 폴슨이었던가를 살짝 궁굼해하며- 마치 오래전부터 작심하고 구매하기로 했던 앨범인양 무심코 핫트랙에서 From A Basement On the Hill 알범을 들고 나왔다.

이상하게 제시의 눈빛을 쫒고 있다보면 몇번이고 살짝 불쾌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가 셀린느에게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처음부터 알고있고, 그것이 그에게는 물론 동시에 내게도 충실히 작용하고 있는 욕구이기에 셀린느가 눈빛으로 혹은 몸짓으로 애타게 거절하는 그 순간들마다 제시가 느꼈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본능에 대한 어떤 자책감과 허탈함을 동시에 느끼게 되는 것이다. 물론 9년동안 능구렁이가 되버린 제시에게는 그 모든것이 자연스럽기만 했을지도 모르지만. 서른이 훌쩍 넘은 그들이 공감했던 그 어떤 상실감과, 허무, 영원에 대한 불신, 믿음의 부재- 라는 화두가 진부하게 느껴진다면- 내게 있어서 서른 두살이라는 나이는 과연 어떨까 잠시 생각해 본다. 처음부터 가지고있던 쓸데없는 의심이긴 하지만- 제시는 아마 비엔나에 가지 않았을 것 같다. 콜록- 셀린느의 노래를 듣다가 눈물을 흘렸다?

그래 잠시 포즈- 버튼만 눌러 놓았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어.